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장면을 목격하곤 한다. 이는 친구 사이, 가족 간, 세대와 문화를 가로질러 낯선 이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얼마 전 보라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한 소녀를 꾸짖는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염색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맞다”는 확신은 대개 자신의 경험과 익숙함에서 오는 착각이다. 그냥 지나가면 아무 일 없지만,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익숙함은 강력한 렌즈다. 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았을 때 다른 관점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일뿐이다. 우리는 종종 낯섦을 ‘오류’로 오해한다. 이때 필요한 태도는 논박보다는 먼저, 잠시 멈춰서 묻는 일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인가, 해석인가? 상대는 어떤 맥락에서 그 말을 또는 행동을 하는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가? 시대와 문화, 맥락에 따라 ‘올바름’은 달라져 왔다. 한때 결투는 명예였지만, 지금은 중대한 범죄다. 밥상머리 예절도 지역에 따라 달라서 같은 행동이 어느 곳에서는 무례일 수 있다. 익숙함이 다르면 올바름도 다르게 보인다. 우리는 사소한 옳고 그름을 가리느라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다. 빨래를 매일 해야 하느냐, 치약을 어디서 짜느냐 같은 다툼은 애교로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사소한 다툼이 쌓이면 관계와 삶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명백한 잘못은 존재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의 생명과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법은 이런 최소한의 합의를 문서화한 장치다. 그러나 법도 집행 과정에서 개인의 익숙함이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배심원 제도와 같은 여러 사람이 함께 숙고하며 맥락과 상식을 반영하는 장치를 지지한다.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도둑질이 잘못인가? 사기꾼의 돈을 훔친 것이라면. 살인이 잘못인가? 만약 사이코 패스 살인마를 죽인 것이라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 의견을 다를 때, 따지기 보다 양보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말을 하려다가 법까지 언급하게 되었다. 아무튼, 말과 행동 그 자체보다 누가 한 말인지, 누구의 행동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기준을 따라주는 것, 그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