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영화 <벌새> , 김보라 : 리뷰

by 해든




중학생 은희는 사랑을 갈구하며 벌새 마냥 짧은 날개 짓을 한다.

남자 친구와의 사랑, 친구와의 사랑, 가족의 사랑.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그녀가 충만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영화 초반, 문 앞에서 “엄마!”를 찾는 은희의 목소리는 엄마에게 닿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여 있지만 엄마와 은희는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엄마뿐 아니라, 남자 친구도, 친한 친구와 후배도 그 어떤 인물에게도 은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랬던 그의 목소리가 한자 선생님 '영지'에게 닿게 된다.

그 어떤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아닌 제3의 인물. 한자 학원에 새로 부임한 김영지 선생님.

아직 대학생인 그녀지만 마치 세상을 통달한 것 마냥 성인(盛人)의 모습을 비춘다.

비현실적으로 멋진 사람이란 느낌과 더불어 언젠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을 주는 인물이다.


진정한 속내를 들어줄 수 있는 존재란, 관계의 허전함을 느끼고 있는 은희에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은희가 스스로 고려하여 선택할 수 있게 격려해주는 어른. 그리고 그 선택을 존중해주며 응원해주는 인물.

은희는 그 어떤 관계보다 영지와의 일에 열정적이며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하고 그리워한다.

동경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사랑에 빠진 10대 아이.


그렇게 열병과도 같던 아픔이 지나고 2학기가 되면서 남자 친구와의 결별, 좋아한다고 다가왔던 후배의 매몰찬 반응, 그리고 연락이 안 되는 영지 선생님.

모든 것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이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이 터지고 은희는 울음을 터트린다.


애물단지인 친언니가 등교하던 방향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연락을 하여 안부를 묻고

다행히도 언니는 학교에 지각을 해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은희에게 가장 소중했던 인물, 영지는 그 날 성수대교 위에 있었고 은희를 뒤로 한 채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다리가 끊어짐과 동시에 모든 관계가 끝나버린 은희.


아직 어리숙한 은희는 사랑했던 이와의 결별으로써 한 층 더 성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냈고,

누구보다 자신을 의미 있게 해 준 영지와의 경험이 증명해준다.

사랑인지 동경인지 모를 감정은 그렇게 묻어두었다.

언제나 소중한 것은 가장 먼저 떠나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영화는 긴 러닝타임으로, 이렇다 할 기승전결이 없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감춰두었던 감각들을 꺼내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들이 위로받게 되는 재미있는 영화이다.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하는 깨달음과 함께 나도 누군가에게 영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은희들이었던 너와 내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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