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채식주의자>-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작년 여름 방학,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밀렸던 독서를 시작했다.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적어 놓았던 목록이 꽤 길었던 터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살피고는 가장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 들었다. 나의 List 1순위 책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예전부터 읽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았는데 ‘방학’이라는 이름 하에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시간을 핑계로 페이지를 펼쳤다.
<소년이 온다>를 잠깐 소개하자면, 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이며 나를 새벽녘까지 잠 못 들게 해 준 책이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으로는 처음 읽어보는 소설이었는데, 작품에서 배어 나오는 묵직하고도 처절한 외침에 한동안 많은 생각이 고이도록 만들었다. 한강 작가님의 문체는 섬뜩할 정도로 서늘하고 덤덤하며 무심하다. 하지만, 생경감 있는 묘사와 세련된 절제력, 충격적인 내용 흐름과 탄탄한 서사는 독자들의 이목을 이끌어가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후 1년이 지나 읽게 된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이다. 이 책은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상을 받게 되어 큰 화제가 된 책이기도 했다.
큰 주제를 잡아 나누었을 때,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로 구분 지을 수도 있고 폭력과 비폭력,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할 수 있다. 또한 3개의 챕터로 나뉜다. 1부의 시점은 주인공 영혜의 남편, 2부는 영혜의 언니 인혜의 남편(형부) 그리고 3부는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점으로 글이 진행된다. 영혜를 바라보는 제 3자의 시선으로 글은 써내려 가고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 영혜의 속마음은 끝까지 묘사되지 않는다.
1부는 영혜와 1촌 관계에 놓여 있는 남편이 화자이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관계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 중 영혜에게 제일 관심이 없는 인물이다. 영혜를 사랑했다라기 보다는 영혜의 ‘평범함’이 마음에 들어 결혼하였으며 남의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언제나 행동반경에서 행동하던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통제되지 않게 되자 영혜를 짐짝 취급하며 거슬려 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교묘히 장인, 장모에게 이야기하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하나뿐인 아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만의 사회적 지위를 갉아내려 먹는 영혜를 좀벌레라 생각하며 환멸 할 뿐이다. 남편뿐 아니라 그 어떤 인물도 영혜에게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를 상세히 물어보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본 아버지라는 사람은 채식을 추구하는 영혜의 면상을 후려치며 분에 못 이긴다. 말리는 사람들도 영혜에게 화살을 돌리는 기이한 현상을 맞이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 혐오, 멸시, 가부장적인 엄격한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묘사가 많아서 읽는 이에 따라서는 거북함을 크게 느낄 수 있으니 읽기 전에 유의해야 한다.
2부에서는 비디오 예술 작업을 하는 형부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영혜의 엉덩이에 그려져 있는 몽고반점을 보게 되는데 그 이후로 영혜를 남몰래 흠모한다. 나는 정말 한강 작가님이 찌질한 남성의 심리를 잘 나타냈다고 생각했다. 인혜의 남편은 영혜를 흠모하고 영혜의 남편은 인혜를 흠모하는 역겨운 관계. 비이성적이며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이지만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계속해서 합리화하는 남정네들을 보며 기가 차고 추잡함만 느낄 뿐이었다.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에 근친이라는 행위를 진행하게 되며 결국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까지 넘게 된다. 타인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행위이다. 상처 받게 될 자신의 아내, 자녀, 관계된 이들 모두 배제하고 더러운 섹스 판타지에 집중하고 있으며, 위험한 관계에 대한 동경 또는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열망을 추구하는 멍청한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설 속에 나오는 남성들은 상대방인 여성을 사랑한 것 인지, 여성의 '몸', 여성의 '희생', 여성의 '수동성'을 사랑한 것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람 그 자체만으로 바라보고 사랑한 것 일까? 아니면 자신의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물로 바라보며 단순히 욕구 충족의 무언가로 바라본 것 일까.
3부는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앞의 1,2부가 몰아치는 폭풍과도 같은 전개였다면 3부는 주적주적 내리는 장마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둡고 차가운 대리석과 시멘트 벽의 공기가 감도는 병원의 분위기가 인혜의 우울한 내면과 맞닿아 있는 느낌을 준다. 예술에 빠져 등만 보이는 남편이 밉지만 티 내지 않는 인혜는 묵묵히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몰두하며 살아가다 자신의 동생과 남편의 관계를 목격하고 나서는 어딘가 나사 빠진 사람 마냥 가라앉아있다. 이 중에서 가장 큰 충격과 피해를 입었지만, 유일하게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슬아슬 줄타기하듯 언제든 자살해 버릴 것 같아 보이던 인혜는 자신의 자식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을 고쳐먹는다.
영혜는 계속해서 식물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당해왔던 가부장적인 억압, 오토바이에 매달려 질질 끌려가는 개와 관련된 트라우마, ‘나’라는 실체 하는 자아보다는 뜻대로 이용하길 원하는 남성들과 같은 ‘폭력성’에 지친 그녀는 온전히 광합성만 얻고 아무런 폭력도 가하지 않고 받지도 않는 식물이 되기만을 바란 것을 아니었을까? 남을 해치는 것보다는 자신을 해치며, 타인이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웅크리는 삶의 형태가 영혜의 인생을 설명해준다.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죽음으로써 결국 그가 원하는 비폭력의 삶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불쾌하고 찜찜하고 불친절한 책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위의 해석도 나의 주관적인 해석을 겸해 대충 윤곽만 잡은 것이지 작가님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정확하게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독자가 불쾌함을 느꼈고 그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지닌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매번 작가님의 글을 볼 때마다 정말 한 문장 한 문장 감탄하게 되며 어떤 인생을 살아온 사람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