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극단적인 양극화의 주범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을 지목하고 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똑같은 동영상 등을 반복 시청하게 되면서, 동일한 신념을 극단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정치세력들은 민주주의와 충돌되는 "선지자 교리" 등과 같은 본인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모두 빨갱이 또는 간첩 등으로 매도하고 있다.
과거 이석기 등이 주도했던 극좌 정치세력들은 지구촌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중시하는 본인들의 생각과 반대되는 사람들을 모두 친일파 또는 친미파로 매도하였다.
3. 극단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미국에서도 현재 2020년 대선에서 누가 승리했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결과에 대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입장을 첨예하게 엇갈려 더 이상 서로 대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넥서스, 유발 하라리 참조).
2024년한국에서는 내란범 윤석열이 2020년 트럼프의 부정선거 항의를 모방한 듯한, 부정선거 이슈를 근거로 위헌 불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이러한 부정선거 이슈는 극우세력의 유튜브 동영상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극단주의의 증오와 혐오 조장에 맞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당장 떠오르는 생각은,
과거 좌우 진영에서 각자 존경받았던 목사님(문익환, 한경직)으로부터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이것마저도 좌우 진영의 포용적인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각자 반대 진영에서 한분은 종북 주사파로, 또 다른 한분은 친일 반공세력으로 종종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익환(文益煥 한어병음: wén yì huàn) 1918년6월 1일 ~ 1994년1월 18일)은 중화민국 출생의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이다. 민중신학을 주장한 통일운동가, 사회운동가이며 시인이었다. 장준하, 송몽규, 시인 윤동주와 절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호는 늦봄이다. 문익환 목사는 통일이 되지 않으면 온전한 민주화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진보적 기독교인들의 신념에 따라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기 때문에 기독교 사상에 근거한 사회운동을 한 정도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성서학자로도 활동하였다. 그 실례로 문익환 목사는 감리교 목사인 이현주 목사와 함께 공동번역성서 번역에 개신교측 번역자로 참여했으며, 구약성서를 다윗, 사무엘 등의 영웅들에게 가려진 민중의 관점에서 알기 쉽게 설명한 《히브리 민중사》(삼민사 刊)를 저술하였다.
한경직(韓景職, 1902년12월 29일 ~ 2000년4월 19일)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한국기독공보사 사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한 한국의 장로교 목회자이자 교육자이다.
영락교회의 창립자이자, 생전의 청빈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로 알려졌다.
[한경직 목사의 논란 관련 사태 및 사건과 파문] - 위키백과 인용
신사참배 고백
"저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앞에서 죄인이며 신사참배도 한 사람입니다" 1992년 당시 영락교회 원로 목사이던 한경직 목사는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 축하자리에서 이처럼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한 목사의 친일 고백은 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충격을 주면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지만 한국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북한 점령 소련군 만행 폭로
그와 윤하영 목사가 작성한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26일 소련군이 점령한 평안북도 일대의 정황을 미국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영문(英文) 비밀청원서가 2017년 8월 발견됐다. 당시 미군정 정치고문이었던 베닝호프(Merrell H. Benninghoff)에게 신의주 지역에서 소련군이 벌이는 공산주의 정치활동에 대해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 내용이 적혔다. 베닝호프는 이를 미 국무부로 보내며 “38도선 이북을 점령한 소련군의 정치 활동에 관한 최초의 믿을 만한 목격자 증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상상을 넘어선다”며 소련군의 만행을 자세히 기술했다. “신의주에서 소련군은 (은행에서) 120만엔을 탈취했다. 가정집에 침입해 시계부터 여성복까지 귀중품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강간한 사례는 셀 수조차 없이 많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38선을 넘으면서 소련군에게 약탈과 강간을 당한다”고 폭로했다.
서북청년회 조직 관여
지난날 한때 서북청년회 조직의 창립에 관여하였고, 서북청년회는 여성, 유아를 포함한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 (김병희 편저, 『한경직 목사』, 규장문화사,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