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 20일째
이번 주에는 계속되는 야근으로 완전히 지쳐버렸다는 핑계로 늦잠을 잤고 그 덕에 오늘도 늦게 시작한 하브루타 시간이다.
어제저녁에 우리 집 요구르트 장인임을 자부하는 둘째가 만든 요구르트를 같이 먹으며 시작한다. 오늘은 아내가 바나나 주스까지 만들어 주어 무척이나 풍성한 아침이다.
오늘은 어떤 것으로 진행할지는 어제 이미 마음을 먹었었기 때문에 논어 위정편의 학이불사즉망 문장을 가지고 하려고 내 기록장을 펼쳤는데 거기에 어제저녁에 오면서 일과 관련하여 잔뜩 고민한 흔적들이 있다 보니 첫째가 그것에 관심을 갖는다.
첫째가 왠 외계어가 이렇게 많이 적혀있냐고 하여 이것은 간단한 수식이라고 말을 해 주었다. 아빠가 요즘 회사일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가 있고 그것 때문에 고객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그게 어떤 일인지를 자세히 묻는다.
어제의 계획대로 논어를 가지고 진행을 하여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다가 또 하브루타를 하기 위한 가장 기본은 아이들과의 신뢰이고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서 들려주는 것도 좋은 소재라고 했던 글이 생각이 나서 아빠가 하는 일을 좀 설명을 해주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 덕에 아이들에게 생물학 강의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염색체는 23쌍이고부터 시작하였는데 아이들이 못 알아듣는 눈치이다. 그래서 염색체가 무엇인지 아니? 하고 묻자 둘째는 아예 모르고 첫째는 이름을 들어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서 받는 염색체가 쌍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성별이 결정되기 위한 정자의 X, Y 염색체에 대해서 설명을 짧게 해 주었다. 그러자 남자는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 아니 방금 설명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3분도 안 되는 시간에 이걸 처음 듣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간단하게 정자가 만들어질 때 아빠의 성염색체 쌍 중에 X와 Y 중 하나를 가지게 되고 정자가 달리기 시합을 하여 둘 중 하나가 난자와 만나게 된다고 말하고 그중 Y가 난자와 만나면 남자로 발달하고 X가 난자와 만나면 여자로 발달한다고 말해주고 발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말로 하다가 아이들이 멀뚱멀뚱하게 보고만 있어서 다시 그림을 그리며 말을 해주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어하는 것은 발달 과정에서 항문과 입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항문이라는 말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꼬라는 말을 쓸 때였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이 말만 나오면 엄청 재밌어하는 정도까지만 큰 녀석들인데 어떻게 수준을 맞추어 앞으로의 하브루타를 해 나갈지가 걱정이 되었다.
설명 중에 둘째가 묻는다. 아빠 탯줄로 줄넘기를 할 수 있냐고 내가 설명하고자 하는 것은 이랬다. 탯줄을 통해 사멸하는 아기 세포 내의 염색체 조각들이 태반을 거쳐 엄마의 몸안으로 퍼져나간다.
둘째의 질문과 나의 지향점과의 간극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고 하브루타에서는 아이들의 질문을 우선 해야 하는 것으로 읽어서 원래 대로라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싶었으나 시간이 일분 이분 남은 상황과 첫째의 관심은 정자가 달려간다는 것이 헤엄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며 정자는 올챙이처럼 생겼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헤엄칠 줄 아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보니 둘째에게는 엄마 뱃속은 물이 가득 차 있어서 그 안에서는 줄넘기가 힘들 것이라고 둘째에게 더 묻지 않고 설명을 해주고 넘어갔다.
이미 출근 시간이 되어버렸다. 나는 재미있었으나 마음이 급했는데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똥꼬라는 말이 그렇게 재미있는지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고 그래서인지 첫째가 나오는데 배웅 나와 인사하고도 오래 문 앞에 서 있어 준다. 그냥 이 순간이 소중하다.
오늘은 하브루타라기보다는 그냥 설명하는 시간이 되어버렸는데 그럼에도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부분을 잘 생각해서 반영하면 아이들이 의외로 잘 참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경험이었다.
내일 아침은 주말 아침이라 늦잠 자고 일어나는 것으로 아이들과 이야기 한 바가 있는데 하브루타를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일단 오늘 칼퇴근부터 시도를 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