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브루타 19일째
오늘은 요구르트가 다 떨어지고 어제도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우유를 못 사 와서 요구르트를 못 만든 관계로 아내가 토마토를 잘라서 간식으로 내어주어 그것을 먹으며 하브루타를 하였다.
아이들이 잘 먹겠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것이 이쁘다.
오늘은 약간 과감하게 논어의 위정편 15번째 글인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을 가지고 하브루타를 해 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논어책은 이 문장을 의역을 해 놓아서 글의 대구 구절이 좀 깨져있는데 원 문장은 완벽한 대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제 읽은 글에서 칸트의 명언이라는 글이 있었는데 그 글은
Gedanken ohne Inhalt sind leer, Anschauungen ohne Begriffe
sind blind. (Kritik der Reinen Vernunft, B75)
이고 아래와 같이 번역한다고 한다.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이 글을 보며 아침 하브루타에도 일종의 형식을 갖추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아이들과 형식을 갖추어 보기 위해서 글을 불러주고 받아적는 것으로 시작해 보았다.
학교들을 다녀서인지 받아 적으라고 하니 아주 잘 받아 적는다. 그 모습을 보니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그러고 나서 각각 첫째와 둘째에게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바로 문장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나고 물어보았는데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질문을 만들어보면서 글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을 건너뛰니 졸린 데다 재미까지 없을 철학 문구가 아이들이 무슨 생각이 날 리가 없는 것이다.
둘째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고 첫째는 그래도 좀 생각을 해보다가 수학 문제를 풀 때 예를 들어 설명을 한다.
문제를 풀 때 공식만 외우지 말고 그 내용이 뭔지를 잘 생각해 보라는 뜻이라고 설명해낸다.
여기까지 이미 또 출근시간이 일분 정도 남게 되어서 칸트의 위 문장을 읽어주고 내일 계속해서 하자고 말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오늘 이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보고 지내라고 밀하니 두 명 다 네 하고 대답을 해주어 무척이나 고마웠다.
오늘 하부루타를 진행해 보면서 하브루타의 형식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고전의 문장에 대해 힘들어하지 않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고전의 문장 하나를 가지고 일주일 정도 하브루타를 진행해 보면서 마지막은 어제 생각했던 우리만의 고전 문장 만들기로 끝내 보려고 한다.
그리고 하브루타의 시작 때 서로 인사를 하는 의식을 넣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의식도 형식이 있고 내용을 채우는데 나는 너무 아무 의식행사 없이 하브루타를 진행해 왔다는 생각이 들고 공자의 예가 왜 형식을 띄게 되었는지도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