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을 맞아 누님네와 시차를 두고 부모님을 뵙고 왔다. 코로나로 많은 모임이 힘들어진 지난 수개월 동안 형제간에도 만나지 않고 지내다 보니 아무리 온라인으로는 계속 연락한다고는 하지만 조카들 크는 모습도 잘 못 보고 지내고 있어 이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기를 다시 한번 원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부모님도 오랜만에 뵙는 것이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백신 관련해서 어떻게 연락은 왔는지 여쭙자 부모님께서 엄청 화가 많이 나 계신 것이 눈에 띄었다. 분노의 대상은 다름 아닌 대통령!
지난 보궐 선거 때 40대만 "이상하게"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하시더니 곧 우리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부터 시작하여 원전 폐기 때문에 우리나라 산업이 큰 기회를 놓쳐서 우리 손주들이 먹고 살 거리가 없어졌다느니 백신은 지금 엄청 부족하고 대통령이 일을 잘 못 해서 그렇다느니 하면서 엄청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현재 부모님이 현 대통령에 대해 분노하며 싫어하시는 이유도 어제 들으며 기억한 것을 정리해보면 위에서 언급했던 1. 원전 폐기로 인하여 우리나라가 큰 기회를 놓쳐서 곧 망하게 생겼다. 2. 백신 계약을 잘 못 해서 나라가 곧 망하게 생겼다. 3. 이번 코로나 때문에 세금을 너무 많이 써서 곧 경제위기가 올 처지여서 곧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4. 미국과의 반목하고 중국과 친하게 지내서 곧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5. 좌파 참모들만 옆에 두어서 빨갱이 정권이 되었다. 정도로 정리를 해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분노의 시작은 어디인가. 그리고 내 경험에서 비슷한 류의 분노가 기억이 났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왔지만 우리 집안은 전라도에 근간을 두고 있다 보니 대학생이 된 지 한 참 뒤에야 경상도 출신 친구들에게 전라도 쪽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큰 지를 약간이나마 들어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당시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왜냐하면 경상도의 많은 어르신들이 전라도 지역 사람들을 개인적인 이유로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용을 듣고 "공분"하신다는 것이었고 그 정점에는 그분들 용어대로라면 "간첩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아마 그렇게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는 있다. 참고로 당시 내가 느꼈던 기분은 봉변을 당한 기분이었는데 왜냐하면 최소한 내가 아는 집안 어르신들은 내가 커나가면서 한 번도 경상도 사람들에 대해서 반감은 고사하고 아예 어떤 말씀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지역인 충청도나 강원도 사람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상도 지역에 대해서 특별히 할 말이 없으셨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보면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경상도 대 전라도의 구도가 아니다. 일방적인 경상도의 대 전라도에 대한 분노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 봉변을 당한 것처럼 느꼈던 것이다.
이러한 분노 하며 싫어하는 그 근본 이유를 보면 다들 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는데 예를 들어 전라도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들이 주유하러 가면 문전 박대하면서 기름을 안 넣어 준다던지 무슨 일만 하면 책임을 안 지고 나 몰라라 한다던지 아니면 결국은 뒤통수를 치는 사람들이라는 내용이었다. 본인들의 경험은 아니고 그렇게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들었다는 것이 주된 근거였다. 어쨌건 어떤 나쁜 행동들에 대해서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그러한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공분하는 모습이 상당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와 비슷한 분노의 상황이 우리 부모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코로나로 인한 미국에서 일어나는 동양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그리고 아마도 1920년대에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을 학살했던 당시의 일본인들에게서도 일어났던 일일 것이다.
우리의 경험으로 이런 종류의 분노는 논리가 필요가 없다. 이미 자신들만의 논리로 무장해 있고 흥분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분노의 대상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학폭 연예인에 분노하면 그 뒤로 일어나는 일과 똑같은 흐름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다만 여기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과 이성적으로 이야기 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상황으로 보이지만 부모님이 결국은 손주들 잘 못 될까 봐 화를 내시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도 우리 자식들이 커나가는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나온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포용적 경제제도"와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가 있을 때 착취적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방법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내가 손바닥 만한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국가의 권력자가 와서 그 땅은 내 것이다 하고 뺐어 갔을 때 국가 시스템을 이용하여, 즉 재판으로 다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회라면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김영삼 대통령 이후로 착취적 경제제도에서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진 나라로 변모하였다고 위 책에서 설명하고 있고 북한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똑같은 지리적 위치와 문화와 역사와 기후를 가졌음에도 남북 간의 경제력 차이가 이렇게 발생한 것이다라고 예를 들고 있다.
갑자기 이 책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어쨌든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 대통령에 대한 사회적 공분으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 그렇게 힘들여서 탄핵했던 당이기 때문이다. 이번 보궐선거로 인하여 우리나라는 두 개의 거대당 이외에는 대안 당이 없다는 것이 너무 확실해졌고 그렇다면 이제 정치를 하는 두 개 거대 당은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이 분노와 혐오를 이용하여 정권을 서로 사이에서만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보인다.
민주주의 절차에 의해서 당의 권력이 민주적으로 이양되는 것을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민주주의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하는 것이고 이 상황에서만 "포용적 경제체제"가 유지가 될 수 있는데 형식적 민주주의의 모습만 갖춘 상태에서는 여야가 계속 바뀌더라도 결국 "착취적 경제" 구조는 바뀌지 않고 나라는 실패하게 된다라는 내용도 위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예로 위 책에서는 멕시코의 정치체계를 말하고 있다. 민생 실패로 계속 평화적인 정권 이양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멕시코가 발전을 잘 못하고 치안이 계속 불안한 이유가 결국 착취적인 경제제도를 유지하는 거대 당 둘이서 정권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 부모님 세대는 현 정권에 공분하고 있다. 그리고 20,30대의 젊은 친구들도 다른 이유이지만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나의 자식 세대를 생각해본다. 내가 정치학자도 경제학자도 아닌 상황이지만 이러한 분노의 끝이 거대 양당의 정권 재창출에만 이용되고 있다면 결국 우리나라도 "착취적 경제"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벌써 지난 보궐선거 참패 뒤에 현 여당은 집값 안정에서 개발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마 현 거대 양당 체제하에서는 이제 영원히 집값 안정을 위한 정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이 안 되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 속에서 큰 부를 얻는 사람들에 의해서 "착취적 경제"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현재의 20, 3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간곡히 바라는 점이 있다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경제 기반을 닦았고 우리 40대와 50대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완성했으니 우리의 현재의 미래 20, 30대는 포용적인 경제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 체계를 위한 대안 정치 세력을 꼭 만들어 주십사 하는 것이다. 현 여당의 반대가 구 여당이어서는 안 되는 것일 것이다.
부모님의 분노와 맞닥뜨린 코로나 상황의 어린이 날에 이날의 주인공인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