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바리즘은(중략) 독자라면 누구나 처음 한동안은 빠져들기 마련인, 더없이 감미로운 경험인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는 퍽이나 황당한 중증의 증세가 아닐 수 없다. 보다 못한 어른들은 보바리즘(책에 중독된)에 빠진 아이의 면전에 '우량 도서' 한 권을 부리나케 들이밀며 이렇게 소리친다.
"자, 아무려면 모파상이 그보다야 낫겠지, 안 그래?"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문학과지성사
정신을 잃고 책을 보는 관경이라! 모두가 환영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종종 교실에서 우리는 이렇게 책에 흠뻑 빠져 수업을 거부하는 친구들을 발견할 수 있고 집에서도 음식을 앞에 놓고 책을 읽는 아이들을 발견하기도 하며 흔들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길을 걸으며 책을 읽어서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는 아이들을 본다.
우리는 이 아이들의 안전과 정신 상태를 걱정하며, 또 그 아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책이 어떤 책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 아이가 책에 완전히 몰입되는 상태나 중독되는 상태를 훼방놓기 위해, 아이에게 자잘한 심부름을 시키는 엄마도 있고 수업 중에 책을 읽는다고 혼쭐을 내는 선생님도 있으며 길거리에서 책을 읽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책을 빼앗는 어른도 있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눈이 나빠진다고 1시간짜리 잔소리를 투척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림책 <브루노를 위한 책>에서 브루노가 울라의 손에 이끌려 책의 마법에 빠져드는 이야기는 떠올리기만 해도 괜히 흐뭇해진다. 밥은 내일도 먹고 모래도 먹겠지만 지금 책을 펼치고 읽는 저 아이의 몰입은 아이의 미래는 물론 우리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순간일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아이 머리 속에서 책의 마법이 불러일으킨 놀라운 영감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을 이룬 게 아닐까.
그러니 아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자. 그건 병이 아니다. 정말 믿지 못하겠거든 의심이 된다면 정신과에 가서 과감하게 진료를 한번 받아보자. 아니라면 책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그냥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이의 이름을 불러보자. 아니면 아이가 빠져있는 그 세계로 걸어들어가 볼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브루노를 위한 책>의 브루노가 현실에 돌아와 친구와 반찬고 붙인 목을 보며 빙긋이 짓는 미소처럼,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주인공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엄마의 스프를 한 그릇 먹는 것처럼, 결국에는 모두 책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것을 믿으면 어떨까. 그렇게 아이들이 마음껏 책의 환성적인 세계를 맛본 뒤라면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한뼘 자라있다는 걸, 믿어주면 안 될까?
그냥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현실로 돌아올 때까지 믿고 기다려 주면 어떨까? 그 상태에 안달이 나서 더 좋은 책을 들이밀거나, 책에 몰입하지 못하게 훼방을 놓는 훼방꾼이 되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