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은 분명 있다.
게다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접하는 소설들은 대개 후자일 경우가 많다. (중략)
어느 정도의 시기까지는,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가리지 않고 마구 뒤섞어 읽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 읽은 책들을 하루 아침에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온갖 것이 다 섞여 있다. (중략)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중략) 우리의 욕구가 '좋은' 책을 더 자주 찾게끔 부추기는 것이다. (중략)
'교사'로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 중의 하나는 한 학생이-아무 책이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데도-대량으로 쏟아져나오는 그 숱한 베스트셀러들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굳이 혼자서 가파른 길을 올라 발자크를 벗 삼아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소설처럼, 다니엘 페나크 지음, 문학과지성사
세부에서 콩세알 도서관을 할 때였다. 비단구두라는 기획사를 할 때, 발랄한 상상력을 펼쳐 애정했던 후배가 만화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일하며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책을 한 박스 세부로 보내줬었다. 상당한 비용을 들여 기꺼이 한국에서 세부로 날아온 그 책은, 내게 더없이 감사하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이 책이 논란거리가 되었다. 어머니들 한 축이 도서관에 그 책들을 풀어놓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책이라도 책을 읽기 바라는 어머니들도 있었기 때문에 신간인 그 책들을 보고 눈을 반짝인 어머니들도 있었다. 세부에도 와이책은 물론 살아남기, 보물찾기, 실험왕 시리즈가 각광을 받으며 여행가방에 실려 제법 들어와 있었고 이런 책들은 바자회에 나오면 불티나게 팔린다.
그래서 나에게 더 없이 소중한 그 만화책들은, 도서관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됐고 그 책을 꺼내 보기 위해 위험하게 아이들이 책장에 매달리는 놀라운 풍경을 매일 봐야만 했다. 때문에 일군의 어머니들은 다시 그 책을 치워달라고 요청을 했고 일군의 어머니들은 더 아래로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아이들은 그 만화책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아주 집요하게 집착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국 도서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만화책 시비다. 아이들은 보고 싶어하고 어른들은 못 보게 하려고 하는. 그렇게 집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논쟁은 공공시설인 도서관에서 격정적인 풍경을 연출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만화책 보라고 여기 온 게 아니야!"
뭐, 이런 풍경만 있지는 않다.
"집에선 안 되지만, 여기선 봐도 좋아. 2시간만 보고 가기다."
도서관의 책임자로서 나는 가끔 만화책을 권하기도 한다. 심지어 수업에 활용하거나 상담에 활용한 적도 있다. 심지어 그 책은 나에게 사연이 있는 책들이고 그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그 만화책의 잘된 점과 부족한 점에 대해, 혹은 소소한 논쟁거리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과이기도 하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인기가 있는 만화책 시리즈 중에는, 영어판 코난 시리즈도 있었다. 영어판 코난 시리즈와 만화 삼국지는 아이들이 애정하는 만화책이었는데, 이 책들은 그 주에 가장 책을 많이 빌려본 독서왕들에게 제공이 되었다. 아이들은 몇 시간씩 푹 빠져서 그 책들을 보았고 보고 또 보았다. 그래서 그 아이들이 모두 만화에 중독이 되었거나 만화가 없으면 괴상을 지르는 몬스터로 변했나 하면, 결단코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놀랍게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멋진 다른 책들을 찾아냈다. 만화를 충분히 읽었기 때문에라고 말하기에 세부에는 한국처럼 만화책이 흔치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독에 이르기가 쉽지는 않은 환경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는 다른 재미있는 읽을 거리를 찾고 또 다른 재미있는 읽을 거리 중에는, 고전이나 명작, 역사 따위의 흔히 엄마들이 바람직하다도 여기는 책들도 충분히 포함이 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꺼내 다시 보고는 했다. 느티나무 도서관 관장님의 이야기인 그 책에는 축구하다 지치면 달려와 물을 달라고 하던 아이들이 책을 읽게 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그 대목을 꺼내 읽고 또다시 읽고는 했다. 도서관은 모름지기 그런 곳이어야지. 그런 도서관에서라면, 만화책을 읽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아이 책을 빼앗지 않을 테니까. 사실 그 무렵 나는 한국에서 재미있는 만화책을 500권쯤 사서 들여올 생각까지 했었다. 여러 이유로 콩세알 문을 닫고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는 기꺼이 괜찮은 학습 만화책과 명작으로 부를 만한 만화책을 500권쯤 들여와 만화섹션을 따로이 만들었을 것이다. 콩세알 도서관의 문을 닫은 것이 아쉬운 까닭은, 그 만화도서관을 완성하지 못한 점이다. 그랬더라면 어땠을까?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클럽의 지도를 맡았을 때, 내가 받았던 가장 큰 찬사는 "만화책만 읽던 우리 아이가 책을 읽는다"였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와서 그 책을 다시 읽는 거예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추천해 주신 책이 너무 재밌어서 아이가 책에 푹 빠진 것 같아요." 등의 메시지들은 하나하나 힘이 되는 인사였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내가 맡은 여덟 명의 아이들이 원래 책을 보지 않았다거나 만화책만 봤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은 송미경 작가의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다>에서 등장하는 이상이, 시인 이상인 것을 단번에 알아내서 나에게 알려주고 이현의 <플레이볼>의 남자주인공이 남성적이지 못한 사고 구조를 가졌다고 지적하기도 하며 8개월만에 영화 마션의 원작 소설을 함께 읽고 싶다며 토론할 도서로 선정해 달라고 하는데 말이다.
편하게 책을 읽을 시간과 책을 읽고 떠들 시간이 제공이 되자, 아이들은 책을 읽고 힘껏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었던 것뿐이 아닐까. 만화책을 잘 읽었던 아이는 읽기 책도 잘 읽을 수 있는 엉덩이를 붙이고 책을 볼 힘을 어느새 길렀던 것은 아닐까.
물론 학습만화 중에도 잘 만들어진 만화책이 있는가 하면 오류 투성이인 만화책이 있을 수도 있고 너무 많이 읽으면 언어발달에 영향을 미치거나, 독해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겠다. 학습에 도움이 되라고 읽었는데 학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책을 꽁꽁 숨기거나 아이들에게 멀리 떼어놓을 수 있을까? 그건 텔레비전을 없애는 것과 같다. 거실을 책장으로 꾸미고 텔레비전을 없애지만 그렇게 애를 쓰고 아이패드를 쥐어주기도 하고 아이가 보육시설에서 4시 이후에 뽀로로와 애니메이션에 빠져 지내는 것을 그냥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어차피 텔레비전을 차단하려고 해 봐야 별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텔레비전을 못 보게 애를 쓰다 보니 아이들이 식당 텔레비전 앞에 좀비처럼 앉아 영혼을 빼앗겨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니까 까짓, 만화책! 읽고 싶다면 읽게 두자. 대신, 같이 읽으면 어떨까? 아이가 읽는 만화책에 엄마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읽으면서 그 만화책에서 나온 어떤 내용을 조금 더 흥미진진하게 다룬 읽을 책을 찾아주면 어떨까? 만화책에 빠져 있는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눠서, 아이가 만화책의 어떤 면에 흠뻑 취해 있는지를 알고 대화를 나누고 혹은 함께 만화방에 가본다면 어떨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에 아이와 함께 새로운 책을 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괜찮은 독서클럽에 나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고 서점에 나가서 새롭고 흥미로운 장르의 책과 만나게 해줘도 좋겠다. 그렇게 아이가 만화책을 내려놓고 다른 책을 잡는 순간은 생각보다 곧 올 수도 있다.
좋은 책을 읽히고 싶은 게 당연한 부모 마음이다. 한때 나도 까다로운 독자여서 서사가 탄탄하고 묘사가 풍부한 수작이 아니면 폄하하고 낮춰 보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좋은 책을 찾아서 읽기 전에는 사실 만화책은 물론이고 하이틴로맨스라고 불리는 HR이나 재미나 흥미 위주로 만든 허접한 책들을 읽었던 때가 있다. 내가 지적 허영에 눈뜬 것은 고작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고 그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선생님이 읽으셨던 고전과 명작 서른 권을 낑낑거리며 집까지 져다 나르면서 부터다.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책들을 가져온 나는 그날부터 그 책들을 모조리 읽어나갔다. 그런 뒤로는 어려운 책을 정복하기 위해, 독서계의 잔다르크처럼 헌책방을 헤매고 도서관을 탐색했다. 나는 콩세알 도서관을 찾았던 아이들에게, 독서클럽으로 만난 아이들에게, 그렇게 어느 날 분연히 많은 책들 중에서 '굳이 혼자서 가파른 길을 올라 발자크를 벗 삼아 마음의 안식을 찾는' 때가 올 것을 믿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독서력을 조금씩 향상시키며 한 걸음씩 나아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여러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 그 계단들 사이에는 만화책이라는 계단도 한 계단 놓여있을 뿐이다. 혹은 좀 많은 계단을 밟고 올라간 끝에 어른이 되고 마침내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어떤 수준에 이를 수도 있고. 우리는 모두 다르고 모두 다른 이력의 독서력을 가지기에. 당장 내 옆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남편 또한 우리나라에서 꽤나 알아주는 대학을 졸업해서 꽤 괜찮다는 회사에 차장이지만, 밤에 잠들기 전에는 웹툰을 눈이 피로하도록 본다. 왜 안 될까? 그러면서도 사피엔스를 읽는 건 부조화일까? 아마 누구도 이 남자가 저녁마다 보는 웹툰 때문에 사회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낙오자가 되리라고 걱정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