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거듭 읽어도 괜찮아

by 이달

<소설처럼>의 다니엘 페나크는 독자의 권리 네 번째로 '책을 다시 읽을 권리'를 꼽았다. 그는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어렸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린이 된 우리가 책을 다시 읽고 싶어 하는 것은 어렸을 때의 바로 그 욕망과 다르지 않다. 즉 영원히 마법에 걸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책을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만 더!'를 외치는 것이나 아빠가 비행기를 태워주자 또 타고 싶어서 '한 번만 더!'를 외치는 것이나. 지난해 다녀온 파리가 또 생각나는 것이나!




책의 앞부분만 보고 재미가 없으면 휙 던져버렸던 첫째는, 재미있는 책은 줄곧 읽어달라고 조른다. 그렇게 읽고 또 읽어서 책이 나달 나달 해질 때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책장을 돌려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참여자의 집에서 책장을 살펴볼 때, 아이 책 중에 가장 나달 나달 하게 닳은 책들을 찾아본다. 항상 그렇지만 이렇게 나달나달 닳도록 읽은 책이나, 아이가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책들을 살펴보면 아이의 목록을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확실한 것은, 아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이야기에 대한 소신이 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나 보면 아직 어린데도 취향이 확실한 아이들이 많다. 공룡을 좋아하거나 자동차를 좋아하거나 로봇을 좋아하거나 공주를 좋아하거나 동물을 좋아하거나. 그리고 조금 더 오래 그 아이들을 지켜보면 그들의 사랑이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룡을 좋아했던 아이가 곤충을 좋아하고 곤충을 좋아했던 아이가 로봇에 빠지고. 공주 이야기를 좋아했던 아이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했다가 역사에 빠졌다가 위인전에 빠졌다가 다시 동화에 빠진다. 깊이 읽기는 좋아하는 아이는 점점 주제를 심화해 들어가고 넓게 읽기 좋아하는 아이는 폭넓은 주제를 읽는다. 그림이 중요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이야기가 중요한 아이가 있다. 그렇게 아이들이 분명한 취향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책을 두 번 세 번 거듭 읽을 때, 나는 그 책을 빼앗는 손을 본다.

"그건 지난번에 도서관에서 읽었잖아."

"책에 실린 걸 왜 사."

"도대체 몇 번을 읽는 거야?"

혹시 이렇게 말하며 아이가 든 책을 빼앗지는 않았는지.



책의 앞부분만 보고 재미가 없으면 휙 던져버리는 첫째는, 재미있는 책은 줄곧 읽어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그 책들은 그 녀석의 책장에 소중하게 보관되었다. 도서관에 그림책을 모두 기부하면서 첫째의 손때가 묻은 책도 기부를 해버렸기에, 우리는 가끔 글씨를 읽기 전에 첫째가 좋아했던 책들을 찾아보는 놀이를 하고는 했다. 놀랍게도 첫째는 자신이 좋아했던 책을 꽤 찾아냈다.

이제 5학년이 된 아이는 여전히 자신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한동안 만화책을 책만화라고 우기며 마법천자문을 보기도 하고 만화 삼국지에도 빠져 열광하더니,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다. 특히 주몽을 좋아했던 첫째는 주몽에 관련한 이야기라면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찾아보았다. 그렇게 푹 빠져 즐기더니 하루는 그 모든 책들을 둘째 동생에게 물려주겠다고 했고 둘째가 그 책을 받을까 망설이다 몇 권을 자신이 가지고 나머지는 다른 사촌에게 물려주었다. 그렇게 책은 흐르고 흐르게 된다.

그때 왜 그 책을 보내느냐고 물으니, 첫째가 대답했다.

"그 책들은 이제 내 마음에 새겨져 있어서요."

인생의 책은 그렇게 읽도 다시 읽으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것이 분명하다.


나에게도 그런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대표로 낭독하게 해주신 일로 인연이 되어 이 책은 지난 30년 세월 동안 수시로 나를 찾아왔다. 이 책을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읽은 것은 둘째치고 그동안 내가 산 책만 수십 권은 된다. 대학 시절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숱한 연인들에게 선물했다면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대상의 나이며 직업, 선물하게 된 목적도 이유도 상황도 천차만별로 기회가 될 때마다 선물해 왔다.

내게는 그림책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내 인생책 리스트의 제일 꼭대기에 이 책은 오롯하게 서 있다. 때로는 성공에 관한 질문을 이 책에서 찾았고 때로는 우정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이 책을 펼쳤다. 최근에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양육의 문제를 놓고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이 책을 펼친다.

최근 내가 <꽃들에게 희망을>을 다시 읽으면서 얻은 지혜는 오롯하게 번데기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 안에 들어가 번데기로 지내는 시간을 함께 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혼자의 몫으로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번데기 밖에서 우리는 그가 번데기를 찢고 젖은 날개를 펼쳐 생에 첫 비행을 할 때까지, 그 순간까지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듭거듭 다시 읽어도 좋다. 인생을 하는 동안 거듭거듭 다시 읽을 책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아기가 같은 책을 읽고 또 읽고 다시 읽는다고 두려워하지 말자. 그 책의 어떤 점이 아이를 사로잡았는지 아이 마음으로 들어가 살펴볼 일이다. 도대체 너는 어디에 그런 매력을 숨기고 있느냐고? 그러면 책이 대답해 줄 것이다. 아이가 당신에게 직접 하지 못하는 어떤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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