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누군가의 밥상 사진을 보게 되었다. 자취하는 분이 차린 소박한 밥상이라는 제목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모래가 헝클어졌다. 언제 밥을 저렇게 먹을 수 있었지 하고 생각해 보았지만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도 그다지 떠오르는 날이 없었다. 위에 분명히 소박한 밥상이라고 적었음에도 나는 그 소박함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단순히 배만 채우기 위한 행위를 해온 것만 같았다.
첫 자취를 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날이 늘었다.
작은 복층 원룸에서 일 년을 살고 나와 다른 곳에서 사는 동안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집은 이전보다 넓고 깨끗했지만 무언가 만들어 먹으려는 의지는 전보다 더 약했는데, 이래서 자취하는 친구들이 사 먹는 일에 익숙해지는 건가 싶었다.
많은 자취생이 그렇듯 식재료를 구입해 한번 만들어 먹으면 그 이후로는 냉장고 속에서 썩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낭비되는 돈과 환경오염의 문제가 나에게 꽤나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더 줄었다.
그 집에서 산 지 반년이 좀 지나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서는 그가 나의 자취방에 종종 머무른 데다 나는 회사에 점심 도시락을 싸 다녔기 때문에 자취생이 할 수 있는 계란말이 같은 간단한 반찬 정도를 만들었지만 언제나 제대로 된 식사의 갈급함은 있었다. 간혹 도시락을 싸기 싫은 날에 점심 뷔페에 가면 "풀떼기를 먹어야 해!!" 하며 샐러드를 퍼담았고, 사 먹는 식사에 곁들여진 야채들도 빠짐없이 먹었다. 어느 때는 쌀에 벌레가 생기기도 했고,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먹을 때가 있었기 때문에 내 건강은 필히 해쳐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늘 있었고,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었을 시기라 두려웠지만 이내 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야 조금 안도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
혼자서 세 집을 거치고 나서 남자친구와 같은 집에 살게 되었다.
프리랜서인 남자친구 덕에 요 며칠은 퇴근 후 집에 가자마자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2주일 사이의 두 번 정도지만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 간단히 셰이크를 챙겨주기도 한다. 누군가 집에 있다는 것은 밖에 나와있는 사람에게 안정을 주는 든든한 일이다.
자연스럽게 엄마를 생각한다.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엄마도 일을 하면서 집안일을 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언제나는 아니었지만 몇 달이 지나고서라도 만들어주었고,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 날을 만들기 위해 엄마가 했던 노력이 이제야 보인다. 겪어보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것이었고, 매 끼니를 챙기는 일 또한 꽤나 고된 일이었다.
자취할 때 쓰던 작은 냉장고가 아니라 두 배, 세배는 큰 냉장고를 샀다.
그 안은 아직 여유 있게 비워져 있다. 함께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고기도 사고, 야채도 사서 돌아와 그가 끓여주는 소고기가 잔뜩 들어간 뭇국에 밥을 먹고 내가 만든 반찬으로 식사를 한다. 엊그제는 오징어볶음을 만들어 먹었는데 이건 몇 달 전부터 생각했던 메뉴. 자취방에 있던 냉장고는 터무니없이 작으니 아무리 집 가까이에 코스트코나 이마트, 집 앞에 마트가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닭 가슴살 1킬로를 사다 넣고, 밥을 해서 냉동 보관을 하는 걸로 이미 냉동실은 꽉 들어찼다. 냉장고가 커지니 사고 싶었던 것들을 사도 자리가 남는다. 냉동 아보카도, 냉동 블루베리, 냉동 손질 오징어….
주말 동안은 삼시 세끼를 촬영하는 것 같았다.
매 끼니를 만들어 먹었다. 특히나 일요일에는 월요일에 내 도시락 반찬으로도 들어갈 메뉴를 만들어야 했는데 토요일에는 야채를 잔뜩 넣은 소시지 야채볶음을, 일요일에는 또 야채가 잔뜩 들어간 오징어볶음을 만들었다. 밥솥으로 두 번이나 밥을 했다. 내가 혼자 살 때는 한번 밥솥에 밥을 하면 일주일은 거뜬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속도다.
양 조절에 실패해서 언제나 야채가 많이 들어갔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그동안 못 먹은 걸 실컷 먹어야지 싶었다.
이제 한두 개 사 오던 당근과 양파는 한 봉지, 한 무더기 사 올 예정이다. 파도 고작 두 줄기 사 왔는데 한 단으로 구입해야지. 이렇게 손도 커지고 입도 커지는 날이 계속될 것 같다.
건강한 식단을 챙겨 먹어야지.
자취할 때 잃어버린 건강을 앞으로는 조금씩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에 장 보러 갈 땐 알배추를 사야겠다. 그때 인스타그램에서 봤던 사람이 알배추를 옆에 두고 사진을 찍었었다. 그런 것도 나에게는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밥상이었나 보다. 아, 상추도 사야지. 생채소를 먹는 날들이 조금씩 더 늘어나기를. 식사를 제대로 챙기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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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작년에 막 신혼집에 들어갔을 때의 일기.
일 년이 지난 2021년 6월의 나는 아주 잘 먹어서 살이 올랐고.. 밥하는 게 좀 힘들고 귀찮아졌다.
가끔 엄마 집에 가서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을 때 정말 행복하고..
사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집 밥이라는 거, 집에서 먹는 밥이 아니라 엄마가 해주는 밥인 것 같다고, 그리고 내 손으로 차리지 않는 밥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ㅎ_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