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시간을 앞두고 자리를 정리하는 게 썩 기쁘지 않았던 날이었다.
언제나 퇴근만을 기다리며 근무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오히려 회사에 있을 때보다 퇴근하려는 이 시간이 더 발목을 붙들고 힘들게 하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은 집에 가서도 계속되었고 이를 눈치챈 남자 친구(=남편)가 무슨 일 있었냐, 왜 기분이 좋지 않으냐 재차 물어보았다. 아무리 감정의 물 밑을 발로 걷어차 보아도 가라앉은 진흙은 먼지만 일으킬 뿐, 쉽게 떠오르지 않았기에 나 또한 답답했지만 원인도 이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퇴근시간이 가까워 책상 정리를 하는데 또. 또다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제는 원인도 모르고 시작점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게 감정을 느꼈다면 오늘만큼은 확실했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퇴근도 30분이나 늦게 했다. 늦은 퇴근을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여서 나조차 의문이 들었다. 왜? 왜지? 언제나 기다리지 않은 적 없었던 퇴근시간이 이렇게나 사람을 괴롭게 만들다니.
언제나 남자 친구는 퇴근하는 나를 데리러 나온다. 어느 날은 지하철역까지, 어느 날은 집과 지하철역의 중간지점에서 만나서 집으로 함께 간다. 이날은 중간지점에서 만나서 함께 집으로 가는데 괜히 심통이 났다. 안 그래도 역에서 먼-길을 걸어 집에 가는데 자기가 중간까지만 오니까 집으로 가는 길이 힘들다면서. 언제나처럼 그는 나를 귀엽게 보는데 썩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집에 와 앉아서 남자 친구에게 얘기를 했다.
"나 퇴근하고 집에 오는 게 즐겁지가 않아."
남자 친구가 상처 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집에 있는데 오는 게 즐겁지 않아.....?"라고. 하지만 정말로 그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 말을 정정했다. 집-회사-집 하는 것도 싫고, 집에 와서 넷플릭스 보면서 밥 먹고, 내일 회사에서 먹을 도시락 싸고, 또 넷플릭스 보니까 재미가 없다고. 주말에는 어디 가지도 못하고 맨날 집에 박혀있으니까 지루하다고.
결혼하기 전에 메리지 블루인가 하는 뭔가가 온다던데, 나는 코로나 블루가 먼저 온 모양이다. 우리는 일상을 잃어버렸다. 저녁을 먹고 바깥을 산책하고,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야외로, 카페로 언제나 여행을 했는데 결혼 준비와 동시에 코로나가 겹치면서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9월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일 년 동안 한 거라곤 결혼 준비밖에 없는데 결혼도 미뤄지고. 작년에 몇 번 촬영을 의뢰받아 사진을 찍어드린 적이 있는데 그때를 시작으로 올해야말로 더 많은 커플을 촬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감히 도전을 할 수도 없게 되었고, 여행을 갈 수도 없어졌으니 11월로 미룬 결혼식이라도 무사히 해내야 한다.
주말에 가족들이 놀러 와서 집들이를 분주하게 끝내고, 집 베란다에서 노을을 보고, 다음날은 차를 타고 목적지도 없는 드라이브를 하고, 분식을 잔뜩 사들고 돌아오는 길에 노을을 보고 했던 게 조금은 기분전환이 되었다. 목적지 없이 달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땐 오히려 편안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주말 내내 노을이 참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그리고 다시 평일. 어제 하루 종일 의미 없는 일을 처리하고 나니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일을 내일로 미뤄두고 브런치에 글을 적어보는 중이다. 이 몇 줄 안 되는 글을 하루 종일 썼다.
저녁도 미리 먹었고, 애인은 내가 퇴근하면 저녁때 밖에 나가 운동을 할 거라고 했다. 아무튼 혼자 조용히 있을 시간이 생겼으니 쉬던지, 뭐라도 꼼지락 거리던지 해봐야지.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든 떠나기로 했는데, 어디를 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집이 아니라면 괜찮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