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랜만에 장을 봤다.
버섯 종류를 네 가지인가 사고 청경채와 양파, 당근, 파프리카. 그리고 손님맞이용 과일과 소고기 뭇국을 끓일 소고기 한팩도 샀다. 고기는 한팩뿐이었는데 구황작물과 채소로 십만 원어치 카트를 채웠다.
퇴근하고 장을 봤으니 이미 늦은 저녁이었지만 며칠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마라샹궈를 만들어 먹었다.
회사에 싸갈 도시락 반찬으로 겸사겸사 만든 건데 출근해 보니 오늘 점심은 사 먹을 것 같아서 괜히 만들었다는 생각이 좀 많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앞으로 굴소스 야채볶음도 할 거고, 카레와 감자 볶음탕도 만들 생각이다. 이렇게 아마 2-3주 동안은 사온 풀떼기들을 먹어도 거뜬할 거다.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남친(=남편)이 옥자를 보고 있기에 함께 소파에 앉아 영화를 봤다.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옥자가 개봉하면서 넷플릭스를 알게 되었고 한창 둘 다 떠들썩한 시기라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옥자를 틀어놓았었는데 아마 그때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동물의 존엄성 같은 건 아예 생각에도 없을 때라 그랬는지 그저 한국 감독과 할리우드의 합작해 잘 만든 영화 정도로만 다가왔었다.
어젯밤 다시 본 옥자는 물론 영화적으로 만들어 낸 픽션이 있었겠지만 충분히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동물을 사랑한다. 나 또한 기억하는 많은 시간을 반려견과 함께 했고, 여전히 길 위의 고양이들에게 사랑하는 시선을 아끼지 않는다. 어제는 무려 하나에 천 원짜리 츄르도 사서 세 개나 까주었다.
그럼에도 섭취하는 동물은 왜 신경 쓰지 않았을까? 그저 보이지 않아서 몰랐기 때문이라고 안일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공장식 축산은 인간과 환경에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한다. 당연히 동물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환경이라고 말하기도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을 목표로 하고 있는 플렉시 베지테리언이다.
아직 개념이 명확하게 잡혀있지 않아서 플렉시 베지테리언은 그냥 일반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앞으로 고기를 먹게 될 때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올해의 길었던 장마가 단순한 장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장마는 나에게 한 달 내내 비 오는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세종기지의 눈이 녹아 땅이 드러나고, 빙하가 녹아 펭귄과 북극곰의 털이 진흙투성이가 되는 것이 더 이상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곧 나의 일이며, 우리 가족의 일이다.
페미니즘과 제로웨이스트, 그리고 베지테리언.
내가 관심 있는 사회 운동이 현 세대의 유행처럼 돌고 돌아 나에게 까지 영향을 미친 것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많은 SNS를 하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접하는 매체가 페미니즘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행이라는 게 문제가 될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위안을 가지고 하루를 산다.
결국 어느 날은 고기를 먹게 되겠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경우엔 최대한 페스코 테리언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의식하고, 조금 더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마지막에 새끼를 탈출시키고 울부짖던 또 다른 옥자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유행처럼 나에게 다가왔다는 뜻이지 저 운동들이 유행이라는 이야기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