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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Dec 09. 2019

동생이 결혼했다.

191026

                                                                                                                                                                                                                                                                                                                                                                                                                                                                                                                                                                                                                     

동생이 결혼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여동생이 나와 같은 나이를 가진 남자와.


따로 살아서 그런가?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하더니 얼떨결에 상견례 자리에 따라가고 본식 드레스를 보러 가고 결혼식 날 자리를 지키고 했던 일들이 크게 감흥이 없었다.


결혼하는 동생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주지 못 했던 것도 사이가 안 좋았던 게 아니라 내 동생도 나도 어떻게 뭘 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의 몫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식 전날 우리 집에 가서 남자 친구가 운전하는 엄마의 차를 타고,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를 하고, 결혼식장에서 엄마 옆에서 하객들을 맞이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이랑 찍은 사진도 없고 동생 옆에 붙어서 챙겨주는 것 또한 하지 못했다. 홀수는 이래서 힘들다.


장거리 운전을 어려워하는 엄마 대신 운전대를 잡은 남자 친구는 숍에서 꾸미느라 바쁜 양가 가족 사이에 덩그러니 있었는데 그게 참 마음에 걸렸다. 메이크업은 안 해도 눈썹 정리도 하고, 헤어도 같이 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남자라 그런지 한참을 기다리고도 금세 끝나버려서 내가 다 서운하고 미안했는데 눈썹 정리를 하고 난 남자 친구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 부분만 클로즈업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버진 로드(라고 부르기 싫은데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하냐)를 걸어 들어오는 동생을 보면서도 이렇게 남 결혼식 보듯 보게 되는 내가 놀라웠다. 보통 동생이나 가족 시집갈 땐 우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눈물은 개뿔. 엄마와 나, 그리고 동생은 눈물 한 방울 없이 크게 웃으며 결혼식을 마쳤다. 엄마도 자식을 시집보내는 건 처음이니까 어찌나 서툰지 결혼은 동생이 했는데 왜 나를 끌고 식당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앞에서 올 때 인사하고, 밥 먹을 때 인사하고. 


엄마에게 나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도 동생이 내려오는 데 오래 걸린다며.. 그 덕에 나는 안 좋은 소리를 너무 많이 들었다. 세상 오지라퍼들이 줄줄이 손잡고 오기라도 한 건지 동생이 먼저 시집가서 어떡하냐, 서운하겠다, 괜찮으냐는 소리를 동생이 결혼 준비하는 내내 들어왔는데 당일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 옆에 서서 하객을 맞는 나에게 이 자리는 네가 혼나는 자리라며, 동생보다 늦게 가서 혼나야 한다며 막돼먹은 소리를 했다. 내가 어디 가만있을 사람인가.. 제가 왜 혼나야 하나요? 저는 제 속도에 맞춰 가고 있는데 누군가 혼나야 한다면 동생이 혼나야 하는 거 아닌가요? 했다. 사실 누구도 혼나면 안 되는 날인데. 내가 왜?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동생이 결혼을 먼저 한다고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거지. 엄마 친구분도 동생이 먼저 가서 서운하지 않냐 하기에 하.. 정말 저는 아무렇지 않은데 그런 말들 들을 때마다 싫다고 했다. 그분은 주변 친구분들에게 한 소리씩 들으며 머쓱해했는데, 진심으로 할 말이 없으면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걱정도 아니고 뭘까 그런 장르는.




언젠가 동생이 자기가 먼저 결혼해서 싫으냐고 물었던 게 생각난다. 언니가 너 먼저 결혼해도 괜찮대?라고 친구들이 많이들 물어왔겠지.


나를 고려해줬으면 고맙기야 했겠지만, 뭐 그럴 것도 없고, 먼저 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하지 말라고 한들 안 했겠냐고. 형제들도 동생이 먼저 결혼하면 형한테 이런 얘기를 하려나? 내가 하필 여자고, 언니라서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너무 많이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동생 새기는 알려나, 내가 이렇게 거지 같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는 걸.. 






동생은 그날 저녁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고, 나는 다음날까지 남자 친구와 엄마의 집에 있었다.


새가 새벽부터 창문에 날갯짓을 하고, 모카는 아침 일곱 시부터 플라스틱 공을 바닥에 굴려대는 바람에 잠도 못 잤는데 엄마가 심심해할까 봐 열심히 놀아주고, 마당의 감나무에서도 감을 잔뜩 따고, 껍질을 까고. 그날만큼은 동생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동생의 결혼으로 나에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동생과 엄마의 곁이 달라지는 것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동생은 당연히 잘 살아야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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