梨花(이화)에 月白(월백)하고 銀漢(은한)이 三更(삼경)인 제
一枝春心(일지춘심)을 子規(자규)야 아라마는
多情(다정)도 病(병)인 냥하여 잠못드러 하노라
배꽃에 달이 밝게 비치고 은하수가 흐르는 깊은 밤에
가지 하나에 깃든 봄의 마음을 두견새가 알겠냐마는
다정한 것도 병이 되어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작년 여름 즈음인가, 이곳을 알게 되었다. 서정적인 이름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어서 평창에 가게 된 김에 검색해봤는데 우리가 여행하려는 곳과 가까운 곳이었다.
어느 이름 모를 산에 있는 이화에 월백하고는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산세가 깊어질수록 이곳이 맞나 싶었는데,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300m 직진하시오"라는 팻말이 보인다. 애인은 정말 여기가 맞나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쯤 팻말이 나타났다며 웃었다. 쓰여있는 대로 직진을 하면 언덕배기에 나무로 지어진 작은 공간이 나타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하늘은 파랗고 산은 푸르다.
이조년의 시는 봄밤을 노래하는 시조이지만 가을의 낮에도 꽤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입구에 달린 풍경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이 작고 따뜻한 곳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는.. 정말 마음을 포근하고, 평화롭게 만든다.
단골손님으로 생각되는 분들이 대여섯 분이 오셨고, 야외에 있는 자리에 앉으셨는데 실내로 들어와 익숙한 몸짓으로 가게의 나무로 된 쟁반을 찾아 식빵을 두 조각 담아 나누어주셨다. 메밀을 섞어 만든 식빵이라고 하셨는데, 여자 사장님께서 웃으며 맛있는 집에서 사 오신 거라고 조금 이따 나올 커피와 함께 먹으라고 말씀해주셨다.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이 이렇게나 다정할 수 있다니. 낯가림도 심하고 항상 같은 사람들만 보고 지내오던 나에게 낯선 이의 다정함은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방명록도 남겼다. 방명록을 들춰보면 사장님께서 쓴 글이 있는데 오래된 산문 같고, 연애편지 같아 글에서 풍기는 느낌이 참 좋았다. 우리가 쓴 글자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이 들게 해 주면 좋겠다. 우리는 여전히 뜨겁고, 풋풋하니까 말야.
나무, 창호지, 따뜻한 조명과 은은한 커피 향, 남자 사장님의 묵직한 저음과 여자 사장님의 상냥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나누는 이야기들이 모여 이 공간을 이루고 있다. 넓지 않아 열 명-열세 명 정도면 이 공간이 가득 찰 것 같지만 그럼에도 북적이는 느낌이 없어 좋은 곳.
내가 앉은 곳에서 보이는 이 시선의 공간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너무 많이 사진을 찍어버렸네..
손으로 직접 쓴 메뉴판. 커피 메뉴도 있고, 핸드드립으로 마실 수 있는 원두는 여섯 가지 정도. 드립 커피를 주문하면서 원두는 남자 사장님께 추천해달라고 했고, 남자 사장님은 과테말라를 내어주셨다.
남자 사장님은 정말 저음인데 목소리가 꼭 성우 같았다. 묵직한 저음이 마음을 진동시키는 목소리. 카페에서는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라디오가 흘러나오는데 그 배경 소리와 참 잘 어울리시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여자 사장님은 이렇게 창밖으로 우리에게 메밀 식빵을 건네준 단골손님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시곤 했는데,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한 장 찍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에 대해 대화를 하시는 것 같았는데 여자 사장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키키 키린 할머니가 생각났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
카페에서 나와 뒤편으로 돌아가면 작업실 같은 공간이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생활을 하시는 것 같은데 여기도 참 예쁘게 생겼다. 한겨울 깊은 산속에서 생활하시기엔 추워 보이는데 서울에서만 살던 나는 시골집이나 나무집에 로망이 있어서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던 공간 같은 곳을 보면 꼭 이런 곳에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평창에 자주 올 일이 없겠지마는, 오게 되면 계절마다 들르고 싶다.
사계를 다 보고 나면 두 분의 이 아담하고 아늑한 카페가 깊은 산속에 자리하게 된 이유를 조금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