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반 출퇴근하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할아버지 혹은 아저씨 아니 청년을 모두 포함해서 남자들이 비교적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에 대해 관대하다는 점이다.
사실 지하철에 자리 잡으려 몸을 날리거나 가방을 던진다는 류의 아줌마를 비하할 때 들려오는 이야기가 진정 아줌마가 되고 보니 유쾌하진 않지만, 대중교통 안에서 동 연령대의 남자들이 자리를 내어주는 일어 있어 비교적 매너 있고 점잖은 편에 속하는 게 나의 체감상 맞는것 같긴 하다.
그런 편협한 경험적 통계에 의한 결론을 내린 이유가 사실 나도 모르게 지하철 자리만 보면 몸을 날리게 되는 나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인지 자기 합리화인지 모르겠다. 일단은 오늘도 어물쩡 자리를 넘겨주신 피곤한 퇴근러 남성분께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한 때 졸렬하게 앉아 있는 남자들을 경멸했던 시절이 있었다. 두 번인데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를 이야기하며 굳이 성별을 분류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사고라고 생각하진 않으나 그땐 그랬다. 내가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많이 졸렬했다고...
첫 장면은 분만 전문 산부인과다.
십여 년 된 일이긴 하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분만을 하는 산부인과가 그리 많지 않아 전문병원이라 불리는 산부인과의 주말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은 토요일에 정기검진을 받기도 어려웠을뿐더러 예약을 한다 해도 많이 기다려야 했다. 당시 남편은 왜 그리 바빴던지 산부인과 진료를 혼자 받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일단은 주차를 하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것에서부터 짜증이 차올라 오던 당시 임산부였던 나는 진료 대기 시간 중 부부가 나란히 병원 벤치에 앉아, 서 있는 다른 임산부들을 모른 척 임신한 와이프와 꽁냥 거리던 남들의 남편들을 보며 분노 게이지를 폭파시켰더랬다.
아니! 저 남자들은 여기 있는 웬만한 여자들이 다 임산부라는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사실 지금에사 그 분노가 함께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열불인지 나의 당시 호르몬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당시 난 모든 분노를 그 남의 남편들에게 귀인 했다.
병원에 따로 항의한 적은 없지만 꽤나 긴 시간 동안 이 일로 그 남의 남편들을 비난했었다. 그런데 그 열폭을 꼭 나만 했던 건 아니었는지 둘째를 가져서 다시 방문한 병원 대기실 앞에 붙여진 문구가 살짝은 나의 분노를 민망하게 했다.
자리는 임산부에게 양보해 주세요.
개인적인 분노는 남 걱정에서 그치지만 공분은 사회적 상황을 개선시키기도 하나보다 생각했다. 나도 동네 언니들에게 이웃일지도 모를 남의 남편 흉볼 일이 아니라 병원에 건의나 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