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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오네오 Sep 14. 2021

앉아 있는 남자에 대한 졸렬했던 분노2

두 번째 이야기



앞서  밝혔지만 두 번째 분노는 첫 번째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좀 더 졸렬하다.


https://brunch.co.kr/@ioneo/30




지금에 나는...


아씨오 물놀이!


외치며 손바닥 한 번만 딱! 마주치면 지팡이도 없이 4명 식구의 수영복 세트와 물놀이 용품을 순식간에 소환해 캐리어 안으로 넣을 수 있는 '육아 마법사'되었지만 애들이 두세 살이던 시절 나는 내 수영복의 빤스와 브라도 세트로 챙기지 못하고 빠트려 놓는 찌질한 스큅이었다.


어떻게 스큅이 마법사가 될 수가 있냐!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그럴 수 있다. 단지 롤링 조앤이 숨겼을 뿐...  동생의 표현을 빌자면 그건 순전히 '사람 고쳐 쓰는 내 남편의 탁월한 능력'되시겠다.

 그래 맞다. 정작 본인은 손 없이 발 네 개  달린 피조물로 살면서 와이프를 마법사로 만들어 놓는 능력 있으신 남편님 덕분에 이제는


 "오늘은 해수욕이다, 오늘은 호텔 수영장이다, 이번엔 리조트다, 해외여행이다." 


어떤 지령이 내려와도 빠트림 없는 내는 마법사가 되었지만 다시 말해 십여 년 전 남편은 낯설고, 아이들은 어린 시점에 나는 내 수영복과 수영모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 그야말로 스큅이었다.


주문을 외면 캐리어로 날아갈 준비가 늘! 되어있는 가족의 수영복


이야기가 상당히 벗어난 것 같은데... 여하튼


두 번째 장면은 이십 대에는 비키니의 성지인 줄 알았으나 정신줄 놓고 애 둘 딸린 아줌마가 되고 보니 그저 아이들의 물놀이장인 캐리비안베이 되시겠다.



마법 같은 능력을 갖추지는 못한 그때 그 시절...

개장시간을 삼십 분가량 남겨두고 캐리비안베이 입구에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 간수하며 서 있던 나는 물놀이장이 아직 개장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진맥진이었다.


꼬맹이들의 쪼꼬만 수영복에 물놀이 용품 챙기랴, 출산에 육아에 늘어날 대로 늘어난 뱃살, 벅지 살 가릴 내 아이템 챙기랴, 당시 아토피로 아무거나 못 먹이던 아이들의 식사에 간식까지 도시락으로 준비해, 심지어 그 이른 아침 애들도 둘이나 안 빠트리고 다 챙겼다. 아홉 시 반에 열 시 개장을 예고하는 캐리비안베이 뱃고동 소리를 듣고 있자면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나는 이제 내려놓겠소.'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남편이 손도 한 번 안 쓰고 나를 마법사로 만들었던 그 원동력은 바로 내 불안감이었다.

물 안에선 아이들  코에 물이라도 들어갈까 불안했고, 물밖에선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불안했다. 물 미끄럼틀을 타면 머리라도 깰까 봐 불안했고, 잠시 눈을 떼면 사라질까 불안했다.


연애할 때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룰인데 양육자는 서로 협력하는 사이지만 먼저 불안한 쪽, 많이 불안한 쪽은 패자라 볼 수 있다. 양육이 경쟁이 아닌데 무슨 승패냐? 졸렬한 생각이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제목에서부터 밝히지 않았던가? 그때 나는 스큅이라 졸렬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그 불안함 때문에 나는 늘 남편보다 먼저 알아채고, 훨씬 빨랐으며, 신속히 움직일 수밖에 없어 육아 경험치를 차곡히 쌓아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늘 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는 사이 내 경험치가 쌓이고 쌓여 마법사의 경지가 되어가는 초입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남자들이 있었다. 그냥 몸 좋은 식스팩 오빠님들이면 차라리 아름답겠으나 안타깝게도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남성님들은...


물놀이장 개장 이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이미 벌써 썬베드와 한 몸 되신 남성분들이었다.


아니 도대체

개장이 열 시인데 열 시 이십 분이 채 안되어 돈 주고 빌린 선베드에 딱 붙어 계신 남정네들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도 용서도 안 되는 분노가 일었다. 웬만하면 내 남자 욕만 하지 넘에 남편 욕은 듣기만 해야 하는데... 성질 같아선 가서 진짜 등짝 스메싱을 날리며 나 대신 아이들 좀 불안해하라고 버럭 대고 싶었다.


아줌마가 누워 쉬는 경우도 있었을 거다.  눈엔 뵈지 않았다. 설령 보인다 해도 에구 힘든가 보다 아침부터 그리 허둥댔으면 좀 쉴 수도 있지 않나 싶은 맘이었을 테니 나의 편협성도 인정은 해야겠다.


아이들과 남편의 물놀이를 배경으로 누워 내가 졸렬했음을 고백한다.


긴 세월이 지나 그때의 졸렬한 분노를 호텔 수영장 썬베드에 앉아 고백한다.


화장실 욕조에만 넣어놔도 세 시간은 놀아 재낄 그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뭔 유난을 쳐 떨며 속으로 분노를 쌓으며 살았던가 싶지만, 그땐 그래야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는 줄 알았다. 이제와 그 유난은 나와 남편 그리고 물놀이 개장 때부터 썬베드와 한 몸이었던 남성분들 모두의 몫이었던 듯싶다.


그래 너희는 자라고 나는 진화했다.


그들인들 오고 싶어 왔으랴...

주말 아침 그 시간에 거기서 자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이게 다 짠해지니 육아 마법사도 꽤나 해 봄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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