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 있는 남자에 대한 졸렬했던 분노2

두 번째 이야기

by 이오네오



앞서 밝혔지만 두 번째 분노는 첫 번째보다 훨씬 개인적이고 좀 더 졸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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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나는...


아씨오 물놀이!


를 외치며 손바닥 한 번만 딱! 마주치면 지팡이도 없이 4명 식구의 수영복 세트와 물놀이 용품을 순식간에 소환해 캐리어 안으로 넣을 수 있는 '육아 마법사'가 되었지만 애들이 두세 살이던 시절 나는 내 수영복의 빤스와 브라도 세트로 챙기지 못하고 빠트려 놓는 찌질한 스큅이었다.


어떻게 스큅이 마법사가 될 수가 있냐!

항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데...

여러분이 몰라서 그렇지 그럴 수 있다. 단지 롤링 조앤이 숨겼을 뿐... 동생의 표현을 빌자면 그건 순전히 '사람 고쳐 쓰는 내 남편의 탁월한 능력'되시겠다.

그래 맞다. 정작 본인은 손 없이 발 네 개 달린 피조물로 살면서 와이프를 마법사로 만들어 놓는 능력 있으신 남편님 덕분에 이제는


"오늘은 해수욕이다, 오늘은 호텔 수영장이다, 이번엔 리조트다, 해외여행이다."


어떤 지령이 내려와도 빠트림 없는 짐을 싸내는 마법사가 되었지만 다시 말해 십여 년 전 남편은 낯설고, 아이들은 어린 시점에 나는 내 수영복과 수영모도 살뜰히 챙기지 못하는 그야말로 스큅이었다.


주문을 외면 캐리어로 날아갈 준비가 늘! 되어있는 가족의 수영복


이야기가 상당히 벗어난 것 같은데... 여하튼


두 번째 장면은 이십 대에는 비키니의 성지인 줄 알았으나 정신줄 놓고 애 둘 딸린 아줌마가 되고 보니 그저 아이들의 물놀이장인 캐리비안베이 되시겠다.



마법 같은 능력을 갖추지는 못한 그때 그 시절...

개장시간을 삼십 분가량 남겨두고 캐리비안베이 입구에 아장아장 걷는 아가들 간수하며 서 있던 나는 물놀이장이 아직 개장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진맥진이었다.


꼬맹이들의 쪼꼬만 수영복에 물놀이 용품 챙기랴, 출산에 육아에 늘어날 대로 늘어난 뱃살, 벅지 살 가릴 내 아이템 챙기랴, 당시 아토피로 아무거나 못 먹이던 아이들의 식사에 간식까지 도시락으로 준비해, 심지어 그 이른 아침 애들도 둘이나 안 빠트리고 다 챙겼다. 아홉 시 반에 열 시 개장을 예고하는 캐리비안베이 뱃고동 소리를 듣고 있자면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나는 이제 내려놓겠소.' 외치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남편이 손도 한 번 안 쓰고 나를 마법사로 만들었던 그 원동력은 바로 내 불안감이었다.

물 안에선 아이들 코에 물이라도 들어갈까 불안했고, 물밖에선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불안했다. 물 미끄럼틀을 타면 머리라도 깰까 봐 불안했고, 잠시 눈을 떼면 사라질까 불안했다.


연애할 때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룰인데 양육자는 서로 협력하는 사이지만 먼저 불안한 쪽, 많이 불안한 쪽은 패자라 볼 수 있다. 양육이 경쟁이 아닌데 무슨 승패냐? 졸렬한 생각이다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제목에서부터 밝히지 않았던가? 그때 나는 스큅이라 졸렬할 수밖에 없었다.


여하튼 그 불안함 때문에 나는 늘 남편보다 먼저 알아채고, 훨씬 빨랐으며, 신속히 움직일 수밖에 없어 육아 경험치를 차곡히 쌓아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늘 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분노가 쌓여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는 사이 내 경험치가 쌓이고 쌓여 마법사의 경지가 되어가는 초입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남자들이 있었다. 그냥 몸 좋은 식스팩 오빠님들이면 차라리 아름답겠으나 안타깝게도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남성님들은...


물놀이장 개장 이십 분이 지나기도 전에 이미 벌써 썬베드와 한 몸 되신 남성분들이었다.


아니 도대체

개장이 열 시인데 열 시 이십 분이 채 안되어서 돈 주고 빌린 선베드에 딱 붙어 계신 저 남정네들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당시의 나로서는 이해도 용서도 안 되는 분노가 일었다. 웬만하면 내 남자 욕만 하지 넘에 남편 욕은 듣기만 해야 하는데... 성질 같아선 가서 진짜 등짝 스메싱을 날리며 나 대신 아이들 좀 불안해하라고 버럭 대고 싶었다.


아줌마가 누워 쉬는 경우도 있었을 거다. 눈엔 뵈지 않았다. 설령 보인다 해도 에구 힘든가 보다 아침부터 그리 허둥댔으면 좀 쉴 수도 있지 않나 싶은 맘이었을 테니 나의 편협성도 인정은 해야겠다.


아이들과 남편의 물놀이를 배경으로 누워 내가 졸렬했음을 고백한다.


긴 세월이 지나 그때의 졸렬한 분노를 호텔 수영장 썬베드에 앉아 고백한다.


화장실 욕조에만 넣어놔도 세 시간은 놀아 재낄 그 조무래기들을 데리고 뭔 유난을 쳐 떨며 속으로 분노를 쌓으며 살았던가 싶지만, 그땐 그래야 아이들도 자라고 나도 자라는 줄 알았다. 이제와 그 유난은 나와 남편 그리고 물놀이 개장 때부터 썬베드와 한 몸이었던 남성분들 모두의 몫이었던 듯싶다.


그래 너희는 자라고 나는 진화했다.


그들인들 오고 싶어 왔으랴...

주말 아침 그 시간에 거기서 자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이게 다 짠해지니 육아 마법사도 꽤나 해 봄직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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