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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Aug 18. 2021

RUN! 뛰어!

배부른 개미의 세상살이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 - 에밀 자토펙(Emil Zatopek, 체코의 육상 영웅)


맞다. 인간은 달린다.

인간은 달릴 수 있도록 발달되었다고 한다.

먼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끈질기게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따라가는 방식으로 사냥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태껏 자발적으로 뛰어본 적이 없다.

자발적으로 숨이 찰 때까지 뛰는 일은 질색이었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어쩔 수 없이 뛰긴 했으나, 적응하거나 남들이 다들 느낀다는 Runner’s high는 딴 세상 이야기였다.


코로나가 터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장 먼저 다니던 수영장이 문을 닫았다.

곧이어 헬스장이 문을 닫았다.

몇 달이면 끝날 것이란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한 듯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지루하게 이어졌다.



 


도저히 아니다 싶었다.

갑갑하다는 생각이 한 번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처음으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주섬주섬 걸쳐 입고 밖을 나섰다.

뛰기 시작한 지 몇 초 (몇 분이 아니라 정말 몇 초였다!)가 지나기 전에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마스크가 재갈처럼 느껴졌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호기롭게 집을 나선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부끄러움과 자책에 세상의 온갖 지혜가 모여있다는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침 조깅으로 22km를 뛰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오래 멀리 뛰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숨 안차게 달리면 된다는 사람도 나왔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뛰자마자 숨이 차는데 어떻게 숨차지 않게 달릴 수 있단 말인가?

200m도 못 뛰는데 어떻게 20km를 달린단 말인가?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으로 매일 뛰었다.

며칠이 지나자 2km는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뛸 수는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죽을 만큼 힘든데 더 늘지 않았다.


간절히 원하면 귀인이 온다 했던가?

달리기 내공이 높은 후배와 모닝커피를 함께 하는 자리였다.

우연히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나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나의 간절하고 막막했던 고민에 후배는 시크하게 그리고 시원하게 말해주었다.

숨찬다고 죽지 않는다고, 숨차도 계속 뛰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다.

심장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 같았는데 계속 뛰어졌다.

놀랍게도 인간은 숨이 찬다고 죽지 않았다.

그 상태로 (비록 매우 괴롭긴 했으나) 계속 뛸 수 있었다.

갑자기 진도가 확 나가는 느낌이었다.


며칠 만에 5km가 깨졌다.

그다음 날 7km를 달렸다.

그다음 날 10km를 달릴 수 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저녁이면 달린다.


이젠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숨이 차지 않는다.

생전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뛰고 있다.

아직 Runner’s high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느끼고 있으나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달리는 동안은 편안히 숨을 쉬고 싶다는 생각 외에 모든 잡생각을 떨쳐 버릴 수 있어 너무 좋다.

아무 생각도 없이 달리는 30여분 남짓한 그 시간이 유일하게 생각을 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맞다. 인간은 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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