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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Aug 19. 2021

마... 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해라....

배부른 개미의 세상살이

커피는 지옥만큼 어둡고, 죽을 만큼 강하고, 사랑만큼 달콤하다.- 터키의 속담


아침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잠을 쫓아야 한다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완벽한 합리화다.

카페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얼른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침의 커피는 모닝커피라는 그럴듯한 고유명사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한 잔의 커피와 약간의 수다면 출근길 여운이 남아있던 잠의 찌꺼기를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다.


오전이 한참 지나갈 때쯤이면 그냥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어 진다.

점심시간이 오기 전 재미있는 주제의 잡담과 함께 팽팽했던 일상을 조금 느슨하게 놓고 싶은 때가 된 것이다.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한 잔을 한다.

그냥 마시면 되는데 굳이 뭔가 스스로의 이유를 만든다.


여기까지는 무난하다.

여기까지는 아메리카노 + 아메리카노 조합 혹은 아침의 라떼 + 아메리카노 조합 정도가 정석이다.


갑자기 회사 동료, 특히 상사가 찾아와 커피 한 잔을 권한다면 조금 난이도가 올라간다.

“난 자판기 커피가 좋아… 허허허”, 라던가,

“믹스 커피가 제일 맛있지… 그렇지?” 의 멘트가 온다면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이렇게 오전 타임에 커피 3잔이면 일단 오늘의 카페인 섭취량은 충분하다.

어쩌면 이미 넘어섰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후반전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점심식사 이후부터 진행되는 후반전은 시작과 동시에 몰아친다.

점심식사 후 커피 한잔 내기는 선택이 아니다.

아메리카노와 다른 음료의 가격차가 2배가 넘는 단골 카페에서 다른 음료를 주문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동료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그렇게 또 한 잔의 아메리카노가 위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후가 무르익고 다들 지쳐갈 무렵이면,

“커피 한 잔?”을 속삭이는 수다에 초대받는다.

여기서 “커피 한 잔?”의 의미는 “고르지 말고 제일 싼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자”이다.

그냥 모두 아메리카노이다.

여름이면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고민은 주문만 늦출 뿐이다.


이제 5잔이다.

여기서 잘 마무리해야 한다.

아메리카노 5잔 혹은 아메리카노 4잔 + 믹스커피 1잔이라면 그럭저럭 선방한 것이다.



저녁식사 후에는 재빨리 퇴근해야 한다.

아니면 퇴근 후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퇴근 무렵 누군가 쭈뼛쭈뼛 다가와

“저녁이나 한 끼 하시죠?”라는 제안을 받는다면 이제 연장전이 시작되었음을 느껴야 한다.

보통 저녁식사 동안은 가벼운 이야기로 즐겁게 흘러간다.

저녁식사의 목적은 식사 후 조용한 카페에서 이루어진다.

카페에서 대화의 침묵을 메꾸기 위해 또 한 잔의 커피가 시작된다.


연장전부터는 버거워진다.

그렇다. 많이 먹었다.


코로나가 창궐하는 이후 많이 사라졌지만,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 후 커피를 한 잔 하자는 제안을 받는 경우엔 난이도가 헬모드로 변신한다.


이제 글렀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조용히 외친다.

“마…마이 무따 아이가… 고마해라.”




작년 3월 코로나가 막 시작될 무렵,

안타깝게 카페를 오픈한 후배가 있었다.

오픈 전 커피 맛을 봐달라는 후배의 부탁으로 저녁 늦게 들렸다.

그리고 각종 커피를 내리는 방법을 달리해가며 정성스레 대접받았다.

거절 않고 주는 대로  벌컥벌컥 마셨다.


늦은 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내 눈은 차의 헤드라이트 마냥 똘망똘망했다.

주차장에 도착한 내 차는 헤드라이트를 끄고 잠들었건만,

내 눈은 꺼지지 않고 여전히 똘망똘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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