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안 Aug 24. 2021

아빠가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댔어요!

배부른 개미의 세상살이

정해진 과학 수업 커리큘럼에 따라 학부모들이 과학 실험 수업을 하나씩 진행하는 때였다.

당시 내가 맡은 과학 실험은 금속의 열전도도가 높아 열을 빨리 방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https://www.lgsl.kr/pic/MYPT2005110003


위의 실험과 유사한 것으로 저학년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꾸며졌다.

A4 종이 위에 동전을 올려두고 불붙은 양초에 가까이 가져갔을 때 동전이 있는 부분은 타지 않고,

동전이 없는 부분은 종이가 타는 것을 직접 실험해 보고,

왜 동전이 있는 부분은 타지 않는지 각자 의견을 말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금속의 높은 열전도도와 열 방출에 관련된 자료를 읽고 최대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기 위해 준비했다.

그리고 불을 다루는 실험인 만큼 조심조심 실험을 진행했다.

공식적인 불장난이 가능한 실험이라 그런지 모두들 잘 집중해 주었다.

실험이 끝난 후에 결과를 기록하고 종이를 뒤집어 동전이 있던 자리가 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 왔다.


A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년이었다.

저학년 남학생 치고는 매우 얌전한 편이었고, 틀린 답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진 듯했다.


발표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다들 저마다 생각하는 이유를 당당하게 말했다.

동전이 불을 막아주어서라는 의견부터, 얇은 곳이 먼저 탄 것이라는 의견, 동전이 종이를 눌러서 그렇다는 의견까지…

정말 아이들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기발한 의견들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끝까지 말을 하지 않던 A에게 의견을 말해 보라 했다.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니 맞고 틀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최대한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A는 계속 잘 모르겠다는 말만 조그맣게 한 번 말했을 뿐이었다.


이대로 토론을 끝내면 교실 뒤편에 있을지도 모르는 A의 부모님이 속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A 앞에 쭈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한 번 말해보라 했다.

용기를 한 번 내보면 좋을 것 같다고도 했던 것 같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뭔가 말하려고 하기에 주변의 집중을 끌어오기 위해 나는 다시 다정하게 질문을 했다.

“A가 생각하기에 동전이 있으면 왜 종이가 타지 않는 것 같아?”

머뭇하던 A가 입을 열고 생각보다 큰 소리로 답을 했다.


“아빠가 돈으로 안 되는 건 없댔어요!”


순간 어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뒤에 학부모들은 터지려는 웃음을 내 눈치를 보며 끅끅 거리며 참고 있었고,

아이들은 ‘에이~ 그게 뭔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A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렇지 좋은 의견이구나~!” 하며 맞장구를 쳐야 할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하며 설명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물쩍 웃음으로 넘기며 엉거주춤 일어나 황급히 실험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을 마무리하는 나에게 다들 의미심장한 웃음을 던지며 교실을 떠났다.


그렇지, 돈으로 종이를 타지 않게도 할 수 있지…

근데 동전보다 큰돈이면 아무 소용없는걸…

실험이든 삶이든 적당해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걸 그랬나 보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마음에 드는 걸로 할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