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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Sep 01. 2021

가볍게 사는 즐거움

배부른 개미의 세상살이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보통(?) 사람들은 나이가 들며 점점 무겁고, 정교하게 살아가는 듯했다.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


몇 년 전인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오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거의 몇 주를 정말 죽을병에 걸린 사람처럼 살았다.

스스로에게 놀란 것이 의외로 내가 삶에 대한 집착이나 여한이 크게 없었다는 것이었다.

죽음에 대해서 놀랄 만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나 자신이 생경했다.



어찌 되었건 몇 주만에 나의 죽을병은 오진이었다는 판정을 받았고,

다시 살아난 나에게 생긴 변화는 가볍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모든 일을 정말 죽을 듯이 했다. 말 그대로 아둥바둥거리며 살았다.


죽음을 코 앞에 두고도 더 열심히 살 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살았던 것 같다.

우습게도 죽음이 저 멀리 물러나니 이젠 좀 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설명할 수 없지만 - 열심히 살았기에 후회가 없었다면 더 열심히, 아니 최소한 지금처럼 살아야겠다는 것이 정상인데도 - 가볍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날이후 정말 삶이 가벼워졌다.

마음에 지고 있는 짐도 모두 내려보려고 노력했다.

쓸모없이 쌓여있는 온갖 물건들은 미련 없이 내다버리고,

스스로 만들어왔던 온갖 규칙들을 미련 없이 깨뜨리기도 했다.

10여 년을 끊었던 술도 다시 마시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성취로 연결되어야만 했던 삶에서,

그냥 흘려보내는 삶으로 조금 바뀌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고,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 부족한 형편이어도 일단 질러도 봤다.

모르면 모른다 하고, 알기 위해 바둥거리지도 않았다.


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엉망이 될 것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이대로도 잘 굴러갔다.

삶이 가벼워지니,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시간적인 여유가 아닌, 뭔가 삶에서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것이 생겼다.

삶의 양태는 변한 게 없는데, 삶에서 느껴지는 여백이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인다.


사람이 과거의 일을 보면 하찮게 보이고, 어설퍼 보이는 이유가 삶이 쌓여갈수록 경험이 쌓이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정교해지기 때문이라는데…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느슨해지고, 어설퍼지고 있는 듯하다.


삶의 허리띠를 조금 풀어보니 뭔가 숨을 쉬기가 편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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