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안 Aug 27. 2020

어제와 같은 오늘이 시작되었다.

완성하라! #01 Prologue

프롤로그

©pixabay


어제와 오늘이 같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그리고 내일도 다름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는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확실한 것은 노력이 부족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생경한 물음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정작 원했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니 놓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와 성장은 계단식으로 이루어진다고들 한다. ‘계단식 성장’이라 불리는 이 이론에 따르면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적응을 하고 내공이 쌓이는 정체되는 구간을 유지되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맞이한다고 한다.


이러한 이론에 간절히 원해야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까지 덧입혀지면 노력을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큰 성장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은 노력을 넘어서는 ‘노오력’이라 부를 만큼의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 된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간절해야 하는가?


이렇게 나의 부족한 간절함을 탓하며 노력의 시간을 보내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아침에 눈을 뜨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왜 변한 것이 없지?’라는 질문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 와서 박히게 된다.



멈춰있는 것을 정체라 하지 않는다.

©pixabay


과학 용어 중 잠열(Latent heat)이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숨은열을 의미한다. 어떤 물체가 온도의 변화 없이 상태가 변하는데 까지 필요한 열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얼음이 물로 바뀌는 과정 동안에는 열을 계속 가해도 온도는 0도를 유지한다. 외부에서 가해진 열이 온도를 변화시키는 데 사용되지 않고 고체인 얼음을 액체인 물로 바꾸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잠열은 자기 계발과 연결되어 ‘끝까지 하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많이 인용된다.

많은 이들이 이 현상을 예로 들면서 물이 될 때까지 혹은 끓어오를 때까지 끝까지 하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정작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끝까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과정이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정체는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온도는 오르지 않더라도 얼음이 물로 계속해서 변해가듯 얼어있던 나를 계속해서 물로 변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얼음에서 물로 완전히 변해 있어야 정체가 끝난 후 끓어오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얼음처럼 굳어진 상태가 마냥 지속되고 물이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다고 해서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끓어오르지 않는다. 얼음이 완전히 물이 된 후에야 온도가 오르기 시작하듯, 속성을 완전히 바꿔야 끓여낼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처음 얼음에서 물로 변하는 바로 그 변화이다. 물로 변했다는 그 결과가 없다면 앞으로의 노력이 변화와 성과로 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이 끓어오르기 직전 얼음은 물로 변화하는 하나의 완성을 이룬 것이다. 그 완성을 딛고 끓어오르는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끝맺음과 완성이 중요해진다.


삶 속에서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면, 완성된 것이 얼마나 있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길 권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끝맺음과 완성이 중요해진다. 다른 무엇인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완성이라는 발판을 딛고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10년 혹은 20년의 노력된 삶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뾰족한 말이지만 일단 한 번 받아들이고 곱씹어보길 바란다.


친구가 사는 시골 마을에 작은 다리가 있다.
매년 홍수로 다리가 무너져 보수공사를 한다.
다리를 보수할 때 완전히 마무리하여야 하는데 매년 다양한 이유 - 예산, 날씨, 인력- 로 임시조치만 해 두어서이다.
 다음 해 임시조치 해 둔 다리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확보한 예산은 그 해 홍수로 다시 무너져버린 다리를 임시 조치하는 데 사용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에 다리 공사를 완성시켜야지 왜 무너질 것이 뻔한 임시조치를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변화한 삶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만들 때는 절박함에 쫓겨 대충 다리를 만들어 두고는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세파에 휩쓸려 가도록 내버려 두기 일쑤이다. 그리고 어느 날 절박하게 변화가 필요할 때 다리를 잃어버린 채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변화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좌절하곤 한다.


이는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노력하고 있으나 삶의 방향이 변하지 않고, 삶의 모습이 바뀌지 않고 있다면 변화된 삶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제대로 완성해 두지 못한 바람에 삶의 고단함에  휩쓸려 내려간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해보아야 할 때인 것이다.


완성 해 두지 않으면 매년 쓸려가 버리는 다리처럼 매번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무너질 다리를 만드는 것은 올바른 노력이라 할 수 없다. 올바른 노력은 완성이 전제되는 노력이다. 완성 없는 노력은 자기만족을 위한 무의미한 힘듦에 불과하다.


삶을 변화시키는 데는 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삶을 변화시키는 데는 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