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8편
meritocracy, 실력지상주의
다 필요없고 실력만으로 승부하는 세상이다.
실력이 곧 서열이고,
실력이 곧 권력인 세상이다.
모두 실력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믿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실력이라는 것을 모두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입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실력 = 집안 배경이라 생각한다.
또는 실력 = 경제적인 여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인식을 입 밖에 내는 것이 천박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좀 더 다듬는다.
실력 = 좋은 학교, 학위로 정의하면 그럴듯하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노력과 능력이 동반되어야 하고,
학위 또한 노력과 능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게 좋은 학교와 학위로 버무려진 실력의 정의가 완성되고,
meritocracy의 본질은 부패되기 시작한다.
실력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렵다.
동일선에서 출발한 비슷한 능력의 인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더욱 어렵다.
직장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다.
인간은 수 많은 능력을 타고 난다.
그래서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 어렵다.
평가보다 어려운 것이 인정이다.
상위자의 입장에서 해야만 하는 평가보다,
동등한 입장에서 하든 말든 자유이지만 스스로를 낮춰야 하는 인정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실력이라는 것은 인정받는 것이다.
실력을 인정받았다라고 하지 실력을 평가 받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 이유다.
인정해주지 않으면 실력이 아니다.
스스로의 인정은 설익은 나르시시즘에 불과하다.
그가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양사간 기술관계를 논하는 자리에 그를 보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의 보스는 물론 보스의 보스, 보스의 보스의 보스도 걱정을 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몇 마디의 대면 보고만으로 그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모든 곳에 있었다.
문제가 터지는 모든 곳에 그가 있었다.
문제가 터지면 모두 그를 찾았다.
도무지 그의 정체를 알 길이 없었다.
그의 소속은 명확했으나, 그의 하는 일은 명확하지 않았다.
하는 일은 끝없이 넓게 퍼져갔다.
그는 모르는 것은 분명하게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다시 그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모르지 않았다.
당연히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집안배경도 경제적인 풍요도 좋은 학교간판도 학위도 없었다.
실력없는 그는 가장 실력있는 사람이었다.
문제가 터지는 모든 곳에 그가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과 보상은 일치하지 않았다.
평가를 위한 실력은 진짜 일을 하는 실력과 무관했던 것이다.
슬프지만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평가받지 못했다.
부패해버린 meritocracy의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