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9편
"나가라고 하면 노트북만 덮고 나가려고..."
그의 책상은 깨끗했다.
그 흔한 포스트잇 하나 굴러다니지 않았다.
셔츠에서 꺼내는 볼펜이 가끔 책상위를 배회할 뿐.
그의 일처리는 책상만큼이나 깔끔했다.
칼로 베는 듯하게 일을 잘라내었다.
날카로운 칼로 베어낸 듯 끝난 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어느날 그의 책상 서랍을 보게되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책상 서랍에 칫솔과 치약을 던져넣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책상에는 존재여부도 확인되지 않는 온갖 것들이 뒤섞여있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이 뒤섞인채.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왜 이렇게 아무것도 두지 않느냐고.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나가라고 하면 노트북만 덮고 나가려고..."
당장 실행에 옮겼다.
우선 지난 6개월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을 내다 버렸다.
존재자체를 망각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지쌓인 종이냄새가 머문 서랍까지 비웠다.
쓸모없는 것을 알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버려야 함을 알면서도 다음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다시 넣었다.
여전히 남아있긴 했지만, 이제 시선이 바닥에 닿았다.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책상에 널부러진 것들은 쌓여있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깨끗한 책상이 그렇게도 생경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한 번 비운 후에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서운 관성처럼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책상 속에 쑤셔넣으려고 한다.
토너로 씌여진 A4지에 이유없는 무서운 애착을 느낀다.
학생시절 나의 삶은 심플 그 자체였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대학생에게 어떠한 삶의 변주도 허락되지 않았다.
삶을 지탱할 길은 오로지 하나였고,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절망의 아가리로 빠질 것이 명확했다.
길은 오직 하나였고, 멈출 수도 없었다.
미친듯이 앞만 보고 뛰는 것외에 모든 것은 사치였다.
그렇게 2년 반을 버틴 후에야 살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2년 반을 살던 방을 떠날 수 있었다.
혼자서 버텨낸 장소였다.
2년 반의 치열했던 삶의 도구들이 고작 라면박스 하나에 모두 담겼다.
숨이 죽어 모포같았던 침낭이 반을 차지했다.
치열하게 살아야 했을 때, 가장 심플했다.
성공의 목표도 아닌 생존이라는 목표는 손톱만큼의 잉여도 허락하지 않았다.
잉여가 없는 삶. 절박한 삶은 심플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무섭도록 집중할 수 있다.
돌아볼 것이 없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짐승에게도 사람에게도 무서운 것이다.
그렇게 달린 후에는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는다.
그렇게 갑자기 책상을 비웠다.
책상을 비운 후부터 모든 일은 더 이상 손 쓸 것이 없을만큼 끝내야만 했다.
다시 볼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것이 생겼다.
대신 일의 속도가 빨라졌다.
일이 심플해졌다.
눈 앞의 일만 처리했다.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일에 눈길을 주지 않고 눈 앞에 있는 일부터 끝을 냈다.
몰려오는 일 중 제일 앞에 오는 하나부터 끝을 냈다.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금 돌아볼 필요가 없을만큼 완벽해야 한다.
돌아볼 것 없이 달릴 때, 일은 완벽하게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