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10편
“또요?”
반문 속에 분노가 서려있다.
또라는 단 한 글자에 수 많은 감정이 뒤섞여있다.
업무를 지시하는 자와
업무를 받는 자의
팽팽한 대치가 시작된다.
지시하는 자에겐 다른 대안이 없고,
지시를 받는 자에겐 물러설 곳이 없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정말 그는 몰랐다.
그의 업무가 아니니...
그는 이 일의 적임자가 아니라고 했다.
정말 그는 적임자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이 프로젝트 담당자도 아니었다.
그는 단 한번도 일을 거부한 적이 없었고,
항상 도전적으로 해왔기에
그 누구도 그의 항명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항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은 늘 그렇듯 아픈 곳을 외면하면
결국 곪아서야 터진다.
작은 상처일 때 찢고 치료하자는 의견은 아프기만 할 뿐이다.
곪아서 터진 상처를 꿰매는 일은 항상 터진 상처를 꿰매던 일을 하던 이가 도맡는다.
Role & Responsibility는 평온함의 상징일 뿐,
고름이 터져 흐르는 상황에는 이 상황을 해결해 본 그 누군가가 필요할 뿐.
‘그 누군가’를 찾지 못한다면 ‘그 누군가’를 만든다.
‘그 누군가’의 적임자는 말이 없고, 맡긴 일을 끝까지 해낸 검증된 노예같은 자여야 한다.
타인의 무관심과 실책으로 흘러내리는 고름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낼 수 있는 그런 자여야 한다.
‘그 누군가’에게 Role & Resposibility란 당장 터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직무와 책임범위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4년 전 어느 날,
그는 그렇게 ‘그 누군가’가 되어 보내졌다.
3년간 그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으로 간간히 나타나,
얼굴도 보기 힘든 보스의 보스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하고 사라질 뿐,
눈치없이 그에게 발송되는 해피아워나 파티 초대가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날 그가 다시 돌아왔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 그가 얻은 것은,
막대한 손실을 입힌 프로젝트의 중심인물이라는 낙인과 세 번의 진급누락, 그리고 업무 중 다친 다리가 전부였다.
물론 회사는 프로젝트 종료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그 누구도 그가 프로젝트와는 관계가 없고, 필요에 의해 투입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돌아온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그의 발언은 그의 새로운 매니저에겐 히스테릭한 반응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3년간의 그의 희생은 그저 한 개인의 희생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묻혀갔다.
시간이 지나 잊혀지나 싶은 일이 다시 터졌다.
그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은 히스테릭이라 표현하던 그의 매니저는 입을 다문 채 사라졌다.
회의 때마다 사라지는 그의 매니저를 찾으러 간 이들은 매니저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다시 다들 ‘그 누군가’를 찾는다.
이번에 그들은 ‘해 봤으니까’라는 이유를 들고 찾아왔다.
분명 몇 년 전 동일한 상황에서 경험이 없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이들이,
이번에는 경험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나타났다.
모른다고 다들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누가봐도 정말 몰랐던 그를 사지에 몰아넣을 때는 그렇게 배우는거라 했던 그들이,
이제는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자신들은 모르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한다.
프로젝트 담당자들의 길고 긴 회의의 결과는 어처구니없었다.
다들 모르고 경험이 없으니 그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처음부터 그들은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회의라는 구차한 과정을 통해 다수의 손가락에 숨고 싶었을 뿐.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끝난 회의 결과는 그에게 메일로 전달되었다.
메일을 본 그가 보스를 찾아가 물었다.
“또요?”
미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보스에겐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3년간 그를 방치해 둔 덕분에 누구도 그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누구도 대치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에게도 다른 방도가 없을 것이다.
3년간 내버려진채 모든 책임의 화살을 맨몸으로 막아냈으며, 바닥부터 기어올라 겨우 막아낸 그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진급의 의지마저 사라질만큼 서글퍼진 처지와 서 있기만해도 시큰거린다는 다리만이 그가 얻은 전부이다.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할만큼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둘의 대치는 길고 지루했다.
여전히 진행 중인 둘의 대치는 둘 중 하나가 꺾여야 마무리 될 것이다.
누가 꺾이든 둘 중 하나는 상처를 입어야 한다.
9. 돌아볼 것 없이 달릴 때, 일은 완벽하게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