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12편
누가 적이고, 누가 경쟁자인가?
적과 경쟁자를 구별하라던,
살바도르 아옌데의 외침.
그 외침은 그의 비극적인 최후와 함께 묻혀버렸다.
여전히 이 세상은 적보다 경쟁자에게 더 큰 적대감을 가진다.
경쟁자를 없앰으로써 얻을 수 있는 먹이의 크기를 가늠하기 쉬운 까닭이다.
적을 이기는 것보다 쉽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여전히,
누군가는
오늘도
경쟁자를 죽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출근길을.
분명 그의 적은 밖에 있었다.
지금 이 곳에 함께 앉은 이들은 단연코 그의 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적에게 드러내 보이는 적의보다,
그의 경쟁자에게 드러내 보이는 적의가 더 깊고 팽팽했다.
치열한 회의다.
세상이 바뀐 것을 외면한 채,
오로지
경쟁자를 이기기 위한 회의가 이어진다.
소모적인 이 회의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이 커질수록
경쟁자들을 향하여 발산되는 그의 적의는 커진다.
그가 이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수단은 적에게 있었고,
우리가 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시장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기고 싶을 뿐이었다.
적이 아닌 경쟁자를
그는 적을 이기고 싶었던 경쟁자의 방책을,
자신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 받아들였다.
끝끝내 적과 경쟁자를 구별하지 않았다.
아니, 경쟁자에게 더 큰 적의를 품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닥친 현실은 혹독했다.
그의 경쟁자들은 떠났고, 떠난 그들은 이제 진정한 그의 적이 되었다.
치열한 시장에서 직접 맞닥뜨릴 때마다 연전연패할 수 없는 그에게
오로지 얼마 남지 않은 경험자라는 이유로 조직은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했다.
더 많은 패배를 겪을수록 좁아지는 입지에 불안해하며,
더 많은 경쟁자들을 밀어냈고, 더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조용히, 서서히 몰락해갔다.
그의 조직도, 그도
그 끝이 몰락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최후까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의지만 나날이 두터워져 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는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모든 패배는 그에게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예견한 그 패배를 미리 발설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번의 패배가 쌓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이 패배는 미리 예견하지 못한 채 이 일을 주워 담고 있던 이들의 책임이었다.
그저 열심히, 묵묵히 일한 그들의 책임이었다.
그렇게 최후까지 버텨보겠다는 그의 두터운 의지와,
떠나가는 이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조직은 버티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모른 척 그렇게
9. 돌아볼 것 없이 달릴 때, 일은 완벽하게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