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16편
"지금도 삶은 달걀 안 먹어요?"
첫 번째 독종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이나 애증이 없이 살아온 나에게 그는 충격이었다.
삶의 목표나 성취에 대한 기대 없이 살고 있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실패 하나를 비관해 삶이 제멋대로 가게 내버려 두던 그때 그를 만났다.
그는 삶은 달걀을 먹지 않았다.
그는 지독하게 가난하다고 했다.
스스로 학교를 다닐 처지가 안 된다고 할 만큼 지독하게 가난하다고 했다.
하루빨리 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을 얻고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취업을 앞두고 토익점수가 필요하다고 했다.
토익 응시료조차 부담스러웠던 그였다.
잉여에 치여 나태에 빠진 친구들의 토익 문제집과
삶을 제멋대로 흘러가던 나에겐 쓸모없던 모의 토익 수강권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그게 합당했다.
참담한 표정으로 그는 나에게 점수가 형편없다고 했다.
토익이라는 것은 다른 나라 언어일 뿐인 나에게
그의 고민이 깊게 다가올 리가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며 허둥거리던,
그는 서울 어느 한 학원에서 칠판을 닦고 사무보조를 하는 대가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의미로 소중한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990"
학원 근처 쪽방 같은 고시원에 터를 잡은 그에게 식비가 부족했다고 한다.
월급이라고 받는 몇 푼으로는 고시원 비용과 토익 시험 응시료를 내고 나면 끝이라고 했다.
그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은 생수통의 물이었고,
물과 함께 먹으면 가장 포만감이 들었던 것이 편의점에서 파는 삶은 달걀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삶은 계란과 물로 배를 채우며 그는 2번의 토익을 쳤고,
두 번째 토익점수가 발표되기 전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온 이후 그는 더 이상 삶은 계란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에 돌아온 그에게 배달된 토익 성적표에는 990이라는 숫자가 박혀있었다.
끼니를 굶어가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이 실재한다는 사실과,
그런 현실 따위를 뭉개버리고 성취를 이루어내는 인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몰랐던 철없는 나에게,
나에겐 쓰레기나 다름없었을 그 모의 토익 수강권이
참으로 고마웠다고 하는 그의 모습 앞에 처참할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십여 년이 지난 그는 이미 번듯한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가끔씩 만날 때마다 아직도 묻곤 한다.
아직도 삶은 계란을 안 먹느냐고.
"몰래 하지 말고 같이 합시다"
그는 두 번째 독종이다.
그를 닦달해본다.
사실 그가 수락하더라도 같이 할 자신이 없지만,
현실성 없을 만큼 일을 해나가는 그의 모습을 따라가 보려 내뱉는 말일뿐이다.
몰래 엿본 그의 행동력은 직장인의 행동력이 아니었다.
회사가 망해간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타고 있는 배만 침몰한다면 재빨리 뛰어내려 다른 배에 올라타는 것이 상책일 것이나,
저 멀리서 수십 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선단을 덮치는 상황이라면 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도리어 악수일 수도 있었다.
다들 살아보겠다고 아우성이었고,
생존방법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던 때였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하던 중 누군가 다른 분야 이야기를 꺼냈다.
마침 함께 이야기하던 후배의 아버지가 그 분야에서 일하고 계셨고,
그 분야에서 일을 하려면 몇몇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정보와,
부귀영화를 누리긴 어렵지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야기를 끝나면서 체계화시킨 정보는 뇌리에서 사라져 갔다.
다급한 척, 위기인 척했으나 사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찌 되었건 시간이 지나 위기는 잦아들었다.
위기가 지나갔다기보다 위기상황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 누구도 예전 같은 팽팽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국책과제 관련으로 참여 인원의 프로파일을 챙기면서
우연히 그의 자격증 보유 내역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1여 년 전 모여서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바로 그때 이야기했던 자격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그의 자격증의 취득일이 눈에 들어왔다.
황급히 달력을 펼치고 시험 일정을 찾아보니 그 대화를 나눈 다음 시험부터 차례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응시하여, 단 한 번에 합격했다면
바로 오늘 내가 보고 있는 이 자격증들을 가질 수 있었다.
다시 소름이 돋았다.
나의 같은 시간에서 살아왔지만 그와 나는 이룬 것이 달랐다.
문득 삶은 계란과 형이 떠올랐다.
그때, 그 감정이 다시 휩쓸고 지나갔다.
이번엔 비참함이었다.
나에 대한 비참한 부끄러움이 나를 동여맸다.
그는 여느 때와 같았다.
남들과 똑같이 출퇴근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침몰하는 배에 남아 있던 눈치 없는 월급쟁이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망설임 없이 행동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그와 나의 시간은 동일했다.
남은 것은 잠자는 시간과 퇴근 이후.
그는 이루어냈다.
한두 개가 아닌 많은 수의 자격증이어서 안 되고,
유관 분야가 아니어서 안 되고,
퇴근 후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줄여서는 안 되고,
끝없이 안 될 이유만을 만들어 내는 동안
그는 완성시켜 버린 것이다.
또다시 위기가 닥치면 그제야 미리 준비했어야 한다는 후회를 안고 나뒹굴지 않기 위해
그는 필요한 탈출구를 완성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때로 같이할 것 없냐고 물어본다.
나를 채근하기 위해.
삶에는 부스터가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충전해서 날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뛸 수 있다는 것은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헬스장에 가면 호기롭게 와서
앞사람이 들던 무게를 들려고 하다가 겸연쩍게 포기하고 가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늘 운동하는 사람과 어느 날 갑자기 온 사람의 차이다.
풋살장에 가면 젊은 날 영웅담을 내뱉다가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잔디밭에 나뒹구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늘 뛰던 이들과 갑자기 뛰려는 사람의 차이다.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호기롭게 물속에 뛰어들어 전력을 다해 헤엄치다 다리에 쥐가 나는 이들을 볼 수 있다.
늘 하던 사람과 준비 없이 뛰어든 사람의 차이다.
삶도 동일하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갑자기 벌떡 일어나 어떤 일을 해 낼 수 없다.
누군가가 그러한 일을 해 냈다면, 비록 보지 못했더라도 항상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은 계란으로 토익을 우습게 으깨듯,
똑같은 퇴근 이후 시간으로 자격증을 얻어내듯,
그들은 그때만 부스터를 켜고 달려 나간 것이 아니라,
항상 독하게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내가 보지 못하는 길을 달리고 있었을 뿐.
9. 돌아볼 것 없이 달릴 때, 일은 완벽하게 소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