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15편
"연봉 인상과 진급, 이 두 가지 빼면 직장생활에 남는 게 뭐 있냐?"
그는 잘 나갔다.
그는 낙하산을 제외하고 최연소, 최단시간 팀장 타이틀을 움켜쥔 남자였다.
가끔씩 둘이서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늘 직장생활의 보상은 연봉과 진급이라 했다.
그는 남들보다 항상 빨리 진급했고, 높은 연봉을 받는다고 들었다.
그에게 일을 잘한다는 의미는 업의 전문성이 아닌, 빠른 진급과 높은 연봉 그리고 이 둘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적인 몸놀림이었다.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승승장구, 기호지세
그 자체였다.
그는 같은 팀장이 아닌 한 단계 높은 팀장이었고,
임원들도 당연히 다른 팀장들과 다르게 그를 대우했다.
당연히 가장 빨리 영광의 순간을 맞이할 줄 알았다.
엔딩이 뻔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넌 패배자야! 경쟁이 무서워 도망친 패배자!"
아끼는 마음이 큰 만큼 아쉬움도 컸으리라.
조직을 떠난다는 그와 그를 잡으려는 팀장, 그리고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끌려온 나
이렇게 세 명이 모인 술자리에서 팀장은 소리쳤다.
조직을 떠나는 그는 회사일은 업의 전문성이 전제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입증했고,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그가 잡무라 부르는 일을 던져버리고 오롯이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을.
팀장은 그를 무척이나 아꼈다.
그래서 더 분노했다.
패배자라 소리쳤지만 비난이 아닌 아쉬움을 알기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떠났고,
팀장은 아침부터 쓰린 속을 달래려 컵라면을 처량하게 먹었다.
어느 날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혔다.
이미 임원 승진 명단이 암암리에 돌고 있던 어느 봄날
조직 라인의 임원 3명이 모두 짐을 싸게 되었다.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당사자들도 몰랐던 사실이었다고 했다.
충격에 모든 것이 잠시 멈춰버린 듯했다.
정신을 차리는데 1주일 남짓 걸렸던 듯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모두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졌다.
연봉과 진급이 직장 생활의 전부라고 했던
그는 입사 후 처음으로 진급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하는 충격을 맛보았다.
이후 그는 고군분투했다.
권력의 정점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권력을 향해 고군분투하던 그도 사람이었다.
10여 년에 걸친 권력 투쟁에서 지쳐버린 듯했다.
마음을 내려놓은 것인지, 체념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조용히 물러났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마라"
화들짝 놀랐다.
그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상처 입고 무리에서 쫓겨난 수사자처럼 그는 힘이 없었다.
쟁취하고, 도전적으로 밀어붙이라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바치고 일했던,
어쩌면 그의 전 생애의 3분의 1을 바쳤을지도 모르는 조직에서 버려진
그의 모습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서글펐다.
패배자의 낙인이 찍힌 채 떠났던 이는 이미 업계에서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말 그대로 일가를 이루었다.
연봉과 진급이 전부라 생각했던 그는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해왔다.
말 그대로 소처럼 묵묵히 일만 했다.
하지만 돌아온 보상은 달랐다.
연봉과 진급을 원했던 그였으나, 돌아온 건 불안함과 서글픔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