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19편
늘 그랬다.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내었다.
그는 늘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내었다.
숫자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그를 바라볼 뿐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형사고가 터졌다.
수습이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을 일이었다.
부랴부랴 원인을 찾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다들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기가바이트라는 용량이 무색할 만큼
켜켜이 쌓인 숫자들은 보는 것 만으로 사람들을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숫자에 깔려 모두들 질식할 것 같은 그때 그가 나타났다.
다들 엑셀이라는 삽으로 숫자를 퍼내고 있을 때,
그는 어디선가 불도저를 끌고 와서 숫자들을 순식간에 밀어버렸다.
밀어버린 숫자의 바닥에서 원인을 건져내었고,
깔려있던 사람들은 환호했고,
사고는 수습되었다.
숫자들을 밀어버린 그는 유유히 사라졌다.
그는 조직 내의 유일한 불도저 운전사였다.
그만이 불도저를 운전할 수 있었다.
불도저의 위력을 실감한 조직은 그를 더욱더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황했다.
불도저의 위력을 보여주면 다들 불도저 운전을 배우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제 조직 내 먼지 쌓인 채 방치되던 불도저로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홀로 불도저 운전을 배우던 그 시간이 조직의 성과로 나타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열렬한 불도저 지지자였던 그가 무엇인가 잘못되어간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고가 수습된 후에도 다들 여전히 삽을 사용했다.
불도저가 필요할 만큼의 일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그를 불렀다.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불도저 운전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그를 불러서 쓸 뿐.
불도저에 대한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불도저 운전에 대한 갖가지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프로젝트도 담당자의 구분도 무색해졌고,
삽으로 처리하기 벅찬 모든 숫자들은 그에 몫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도 불도저 운전을 그만두었다.
그도 삽을 가지고 나왔다.
그가 삽으로 일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자신의 일은 여전히 불도저로 하는 듯했으나,
넘어오는 일은 남들처럼 삽으로 했다.
불도저는 한편에 쌓여있고,
운전을 할 수 있는 자도 있으나,
여전히 다들 삽을 들고 나와 숫자를 파내고 있다.
세계적인 흐름이 맞추어 어쩔 수 없이 클라우드 기반의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몇몇 선구자들이 앞서 나가 스스로 개척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조직 내에서의 활용 방법부터 갖가지 팁을 정리하고 공유했다.
드디어 칼이 아닌 총을 들고 전쟁터에 나설 수 있다고 느꼈다.
새로운 기술은 과연 대단했다.
칼을 휘두르며 싸우던 소모적인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고 느꼈다.
방아쇠 한 번이면 끝났다.
새로운 방식의 생산성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라 생각했다.
수개월간의 개척자들의 탐험이 끝났다.
조직으로 돌아간 그들은 칼로 전쟁하는 시대가 끝이 났음을 천명했다.
총을 보여주었고, 그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제 생산성과의 전쟁은 판세가 달라질 것이라 확신했다.
또다시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분명히 총을 가져왔는데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다들 총을 쏘는 법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총의 위력을 실감한 조직은 총을 쏠 수 있는 그들을 이용할 뿐,
스스로 총을 쏘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처절한 생산성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다들 총을 휘두르며 싸우고 있다.
예전 칼보다 휘두르기 불편하다는 불평을 하며.
총으로 적을 제압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적도 쏴달라고 요청할 뿐,
그 누구도 자신의 총을 어떻게 쏘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늘도 그들은 여전히 총을 휘두른다.
칼이 좋았다고 불평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