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적인, 너무나 직장적인 18편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손숙오는 학덕이 높았지만 나이가 들 때까지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뒤늦게 당시 재상이던 친구 우구자의 추천으로 재상의 자리에 오른 그는 덕의 정치를 구현하는데 힘을 쏟았다.
초나라 사람들은 낮은 수레를 좋아하였다.
초나라의 왕인 장왕은 수레가 낮으면 빠르게 달리지 못하고 말이 쉽게 지쳐
전쟁 시 불리하다는 생각에 모든 수레를 높이고자 했다.
장왕은 수레를 높게 만드는 법령을 내리려고 하였으나,
손숙오가 이를 말렸다.
손숙오는 수레를 높이라는 법령은 사람들이 낮은 수레를 타고 싶어 하는 이해와 맞지 않아 반발이 있을 것이니,
수레를 높이고 싶다면 문지방을 높이도록 하는 법령을 내릴 것을 권했다.
이유를 궁금해하는 장왕에게 손숙오는 수레를 타는 군자들은 수레에서 내려 걷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수레에서 내리면서 곧장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낮은 수레를 선호하는 것이므로
문지방을 높인다면 수레의 높이를 언급하지 않아도 저절로 수레의 높이를 높일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동감한 장왕은 문지방을 높이라는 법령을 내렸고, 아무런 반발 없이 법령은 받아들여졌고,
반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초나라의 모든 수레가 높아졌다.
모든 일은 순리대로 가야한다.
그 조직은 끊임없이 사람이 부족했다.
신입사원을 충원하여 몇 년간의 고된 트레이닝을 거친 후
겨우 능숙한 엔지니어가 되었다 싶으면 모두 떠나버렸다.
남은 자들은 능력이 없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징표였다.
떠난 자들은 새로운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영광을 누렸다.
능력 없는 남은 자들과 떠난 자들의 대비가 극명해질수록
그 조직은 점점 더 조직원들이 기피하는 혐오스러운 조직으로 변해갔다.
위축된 조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마침내 조직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조직은 내부 팀 간 이동을 제외한 외부로의 인원 방출을 금지시켰다.
주둥이를 틀어막는 듯한 조치였다.
부풀어 오른 욕구는 틀어막는다고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리고 곧 이직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부풀어 오른 탈출 욕구가 터져버린 것이었다.
조직은 끊임없이 당근과 채찍을 꺼내 들며,
조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수많은 워크숍과 미팅이 진행된다.
잘나고 똑똑하다는 외부의 컨설팅, 수십 년을 근무했다는 관리의 달인,
모두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직을 헤집어 놓았지만,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실무를 알지 못해야 매니저가 될 수 있다는 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
이런 말이 통용되는 조직이었다.
그곳에도 분명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뛰어난 실력, 노련한 경험,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그런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내버려졌다. 자의에 의해서 혹은 타의에 의해서.
그는 실력으로 월드클래스였다.
동종업계의 세계적인 기업의 치프 엔지니어들과 맞짱을 떠서
눈 앞에서 굴복시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모두의 영웅이었고, 롤모델이었다.
그는 새벽까지 숙소에 남아 세계 제일이라던 독일 업체와의 전쟁을 준비했고,
단 두 시간 만에 항복 선언을 받아낸 사람이었다.
그는 일주일 간의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의 치프 엔지니어들과 그들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워
그들의 인정을 얻어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멋진 옷을 입고 계신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조직에서는 항상 뒤늦은 사람이었고, 날이 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성숙치 못한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하는 동안, 많은 후배들은 그와 같이 되고 싶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동경했고, 그의 화려한 승리에 동참하고 싶어했다.
급여나 진급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고수들의 전쟁터에 뛰어들어 그 한가운데서 승리의 영광을 얻고 싶었다.
고수들에게 인정받는 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가고 싶은 길을 보여주었기에, 원하는 삶을 몸소 보여 준 그의 길을 따르고 싶었던 것이다.
누구도 수레를 높이라 하지 않았지만, 문지방을 넘기 위해 강요나 회유가 없어도 수레를 높였던 것이다.
그는 결국 벌거벗은 임금님을 벌거벗었다고 말한 대가로 조직을 떠났다.
그리고 떠난 후 그는 영웅이 되었고, 우리는 목표를 잃었다.
그 조직도 똑같았다.
수많은 영웅들을 정치력으로 밀어냈다.
안 되는 것을 안된다고 말하는 이들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정치력으로 무장된 이들을 매니저로 임명하여 조직을 이끌게 하였다.
십수 년간의 실무능력보다 정치력과 화려한 배경이 필요한 자리가 매니저였다.
실력 순이 아닌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의해 서열이 정해지면,
더 이상 조직은 발전하지 않는다.
발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하루빨리 이 조직을 벗어나,
화려하고 보기 좋은 배경과 정치력을 쌓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수년이 흘러 조직은 피폐해졌다.
그 누구도 더 이상 남고 싶어 남아 있지 않았다.
고여서 썩어가는 물처럼 떠나고 싶었으나 못 떠난 이들은 의욕을 잃은 채 부패했고,
떠나기 싫어 버틴 나태한 이들은 긴장감을 잃은 채 침전되어 있었다.
새로운 매니저들이 충원되었지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오늘도 조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각종 도표와 화려한 보고서가 오고 간다.
하지만 아무도 왜 그런지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알아도 행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수레를 높여야 한다고 한다.
저마다 수레를 높일 방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수레를 타고 다니는 이들은 수레를 높여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수레를 높이는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수레를 높였던 이들의 불행한 끝을 보았기에 더욱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노력의 대가를 불행으로 받고자 하지 않는다.
조직에 헌신한 이들이 영광을 누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면 끝날 일을.
오늘도 모르는 척, 번드르르한 회의만 끝없이 진행된다.
테이블 위에 놓인 에비앙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