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안 Dec 09. 2020

투잡 대신 세컨잡 어떤가요?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온종일 일하고 다시 일을 해야 한다.

지독하게 서글픈 현실이다.

현실이 아닌 생존에 쫓겨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삶에 떠밀리고 있다.

삶에 떠밀리다 한 번이라도 넘어진다면 다시 일어날 길은 요원하다.

혼자 힘으로 일어나는 것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일어난다 하더라도 다시 뛸 수 있을지, 이전의 자리에서 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내몰리듯 살아가고, 내몰리듯 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함에도 부족하여 투잡이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노동을 한다.

삶에 내몰리지 않기 위해.



삶에 쫓겨 투잡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시점에 다다랐다면 두 가지만 생각해 보길 바란다.


1. 발전 가능성

가장 중요하다.

발전할 수 있는 일인가? 소모적인 일인가? 정말 냉정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 투잡을 고려하는 이유가 잠시 동안의 경제적 어려움만 극복하면 되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점점 쪼들리는 형편에 밀려 투잡을 생각해야 하는 시점까지 왔다면 진지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길 바란다.


쪼달려서 투잡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고, 본업에서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푼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 대리운전, 배달대행, 택배 배송, 워드 작업 등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선택하는 일들은 대부분 소모성 노동이다.


이후 택배 대리점을 하기 위해 택배 배송을 하는 것과 당장 몇 푼 벌어보겠다고 택배 배송을 하는 것에는 채울 수 없을 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 점점 쪼달려서 투잡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앞으로의 상황도 녹녹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소모성 노동은 일이 불어남에 따라 노동량도 증가하고, 결국에는 일이 너무 많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거나 내 몸이 일을 견디지 못해 망가지는 것으로 끝이 나기 마련이다.


무조건 이런 일을 하지 마라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이런 소모적인 노동을 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발전된 미래를 만들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면 신중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과 노동을 투입할수록 점점 발전하고 더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일을 택해야 한다. 당장 생계를 위해 투잡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조금 더 멀리 바라보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두 번째 직업(Second Job)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2. 지속가능성

멋들어진 직업과 그에 걸맞은 엄청난 수입을 자랑하는 한 친구는 매년 여름이면 휴가기간 동안 하루정도 택배 상하 차일을 한다. 힘든 노동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고, 일이 끝나면 느껴지는 근육통 덕분에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호강에 가득 찬 이유 때문이다.


이 친구처럼 한 때의 유희처럼 할 일이 아니라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편안한 공간에 앉아 블로그를 하루에 하나씩 올리거나,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여 업로드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다른 노동의 현장에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본업과의 마찰이 생길 경우에는 그 난감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기술문서 번역일을 할 때였다.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서 하겠다고 가져왔는데 설명과 달리 내가 아는 분야에 걸친 내용이 대부분이라 자료를 일일이 찾아가며 진행을 해야 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출장이 생겨 출장지에서 밤늦게 일을 하고 숙소로 돌아와 트렁크에 실린 자료를 뒤져가며 겨우겨우 일을 끝마친 적이 있었다. 정말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상한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노동에 투자하는 시간만큼 급여라는 대가와 숙련도라는 무형의 대가를 얻게 된다. 급여는 일한 만큼만 받을 수 있지만 숙련도는 훈련을 지속하는 시간만큼 가져올 수 있는 무형의 대가이다. 이 무형의 대가를 최대한 얻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숙련이 쌓여 경험이 되고, 경험이 축적되면 시장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생기게 된다.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시급이나 건당 얼마로 계산되는 급여가 아니라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장을 보는 통찰력이어야 한다.




쫓기기 전에 미리 준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삶에 쫓겨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른 채 벼랑 끝에 몰리는 경우가 있다.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몰아쳐오는 빈곤의 화살을 피하기만 해서는 언젠가는 화살에 맞아떨어지거나, 지쳐 쓰러지게 된다. 빈곤의 화살에 맞아도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튼튼한 갑옷을 입고 화살에 맞서거나, 화살이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피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날아드는 눈 앞의 화살을 당장 피하기 위해 미래를 잊곤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이 날아드는 빈곤의 화살 세례는 더욱 거세질 것이며, 몸은 점점 노쇠해져 갈 것이고, 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직업을 가지는 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이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두 번째 직업을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오늘도 빈곤의 화살 속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공이 있기를 소망한다.




작가의 이전글 노력의 배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