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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안 Dec 13. 2020

상상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다.

이번에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매번 받는 질문이지만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다.


공학을 전공한 이들도 엔탈피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 내리고 체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니,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들이게 '엔탈피'의 개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엔탈피를 매일 아니 매분 매초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최소한 나에게 엔탈피라는 속성은 암기의 영역이 아닌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높고 낮음을 판별할 수 있다. 한 무리의 뉴비(Newbie)들을 교육해야 할 때였다. 오전 4시간의 폭풍 같은 교육을 마치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다. 폭풍 같은 교육 진도 속에서도 수없이 끄덕이던 무언의 제스처에서 확인한 빈틈없는 교육 내용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던 찰나, 수줍게 손을 들고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엔탈피? 그게 뭐예요?"


오전 4시간의 교육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고, 오후 4시간은 오롯이 열역학의 기초, 특히 엔탈피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데 쓰였다. 하지만 정말로 이해가 되었는지는 본인들만이 알 것이다.




매번 겪는 일이다. 교육을 목적으로 내가 만난 이들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에게 주입시키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입되어 있는 앎을 실제로 활용하는 일에는 그러하지 못했다. 손이나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을 습득했지만 그것의 의미는 상상해내지 못했다. '알기'와 '이해하기' 그리고 환상과 실재를 분리시킨 교육은 총명한 머리를 한쪽만 쓰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 이거 학교에서 배운 건데?" 설명이 시작되고 수식과 법칙을 들먹이기 시작하면 나오는 반응들이다. 분명 학교에서 배웠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수진 아래에서 좋은 교재를 통해 배웠던 그 사실이 현실과 전혀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알고 있으나 현실에 닥쳤을 때 자신의 앎과 눈 앞의 현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수식을 풀어낼 줄 알고, 법칙의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어떻게 현실과 연계되어 있는지,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모른 채 그저 알고만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지나친 억측일 수도 있지만 엔지니어링은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도 생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분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과학이나 예술은 사고의 틀을 깨어부수는 상상력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한 영역이지만 이미 완성된 법칙들을 조합하고 응용하는 엔지니어링은 그나마 상상력이 부족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도 버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엔지니어링 조차도 내 앎을 상상하여 해석하지 못해 체화된 이해로 바꾸지 못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자기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게 된다. 더 나쁜 것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직접 받아들이는 것들 - 그림이나 숫자, 글씨 등 - 은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자체만 가지고서는 우리에게 실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상상력'을 빌어 해석해야만 한다.


수 없이 많은 '사실'들만 습득한 채 의미를 상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이들이 '일터'라 불리는 전쟁터에서 일머리가 없다고 스스로 자책하며 좌절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것임에도 현실 문제와 연결시키지 못해 모른다고 생각했고, 대학에서 쓸모없는 것을 배운 것이라며 자책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알고 있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속성으로, 알고 있는 것을 상상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해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된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상상할 수 없다면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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