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주권에 이은 AI 주권
2018년 EU는 GDPR(일반 데이터 보호 규정)을 시행하면서 유럽 내에서 수집되거나 저장된 지적 재산, 금융 데이터,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에는 해당 지역의 법률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데이터 주권을 본격 선언했다. 이는 유럽 국민들이 인터넷 쇼핑몰에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하거나 SNS에 글을 올릴 때 기록되는 데이터들을 유럽이 정한 법적 프레임워크에 의해 규제되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자국 내 데이터가 타국의 기업이나 정부에 노출되지 않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개념으로 국가 안보와 자국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등에서도 국가 차원의 데이터 주권 확보를 위한 정책 도입을 본격화했다.
그런 각국의 움직임이 2020년대 접어들면서 AI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2023년 ChatGPT로 인한 생성형 AI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커져가면서 소버린 AI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소버린 AI는 한 국가가 자체 인프라, 데이터, 인력을 기반으로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역량을 말한다. 당연히 데이터 주권 대비해서 더 넓은 범위에서 국가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개념이다.
기존의 데이터 주권이 주로 데이터의 수집, 저장, 처리 및 활용에 대한 통제를 통해 자국민의 데이터가 외국 기업이나 정부에 의해 무단으로 수집되거나, 자국 내 데이터를 타국에서 활용하지 못하도록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국가 안보, 경제적 이익 보호,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와 직결되며, 데이터가 국가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됨에 따라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반면, 소버린 AI는 데이터 주권을 포함한 보다 넓은 개념으로, 국가가 독립적으로 AI 기술을 개발하고 운영하며, 이를 통해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자율성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소버린 AI는 단순히 데이터 보호를 넘어, 외국의 AI 기술이 자국민의 사고방식, 행동 양식, 그리고 사회적 가치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국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AI 알고리즘의 투명성, AI 윤리 기준, 그리고 AI 기술 개발의 독립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전략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이 AI 기술을 글로벌 서비스화하면서 자국의 문화와 가치관을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버린 AI는 자국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회적 가치관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소버린 AI는 타국의 AI 기술이 자국민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에 미치는 영향을 경계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글로벌 AI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콘텐츠가 특정 국가의 문화적 패턴이나 가치관을 반영할 경우,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점차 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자국의 문화적 정체성이 약화되거나, 나아가 상업적·정치적 의도에 의해 왜곡될 위험성을 초래할 수 있다. 글로벌화된 AI 기술의 확산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과 주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으로 소버린 AI가 부상하고 있다.
또한, 소버린 AI에 대한 각국 정부의 관심이 커지는 이유로 국가 안보와 경제적 이익 측면도 있다. AI 기술은 군사,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타국이 개발한 AI 기술을 사용하면 그 기술에 내재된 알고리즘이나 데이터 처리 방식이 자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 그리고, AI 기술은 경제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가 독립적으로 AI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산업에 적용할 수 있으면, 글로벌 경제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반대로, 타국의 AI 기술에 의존하게 되면 경제적 종속성이 심화될 위험이 있다. 한마디로 타국의 AI에 종속되게 되면 AI를 만들고 운영, 제공하는 국가는 갈수록 부강하게 되고 이에 종속된 국가는 갈수록 경제적, 기술적 의존도가 심화되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즉, AI 소버린의 중요성은 단순히 기술적 독립성을 넘어 국가의 장기적인 번영과 자율성,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으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 주권이 AI 소버린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는 하지만, 소버린 AI는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서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각국이 AI 소버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관련 정책을 강화하는 것은 국가 안보, 문화적 자율성, 그리고 경제적 번영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로 볼 수 있다.
✍ 2025년 IT/AI 전망과 기업/개인의 대처 방안에 대해 쓴 저자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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