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인프라의 핵심은 전력에서
인공지능(AI)의 경쟁력 강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엔비디아나 TSMC와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다. 그러나 AI가 막대한 성능과 빠른 연산을 요구하면서 이에 필수적인 전기 에너지의 중요성 또한 급격히 부각되고 있다. 즉, AI 시대의 승자는 이제 반도체 기술뿐만 아니라 전기 에너지를 어떻게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최대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음을 경고했으며 이는 최대 800~1,200TWh 수준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업계 관측도 있다. 한전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으로 국내 161개의 데이터센터 중 63%인 101개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발표했다. Savills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수도권 데이터센터 용량이 2023년 수준 대비 2.4배 증가해 2027년 3.2GW로 확대될 전망이다. 그런데, 국내 데이터센터 용량의 대부분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라 가뜩이나 부족한 수도권 전력공급에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실제로 KEPCO가 2024년부터 신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대한 전력 공급을 제한함에 따라 데이터센터 인허가 중 상당수가 착공이 미뤄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2023년 미국 데이터센터가 전체 전력의 2-3%를 소비했으나, 2028년에는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기존의 전력망으로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공급에 한계가 있음을 말해준다.
이는 2023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는 ChatGPT를 포함한 AI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초거대 AI 모델(LLM)은 수만 개의 GPU를 동원해 학습과 추론을 수행하며 이러한 연산 작업은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수배에서 수십 배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즉, AI 학습과 구동을 위한 필수 인프라인 데이터 센터는 기존의 컴퓨팅 인프라 대비 10배 이상의 전력을 소모할 뿐 아니라 순간적인 전력 사용 변동성이 크다. 게다가 AI의 폭발적 성장으로 인해 데이터센터 개발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어 기존 전력망에 불안정성을 야기시킨다. 반면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와 전기를 실어 나르는 송전망 건설은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인해 AI 산업의 가장 큰 바틀넥은 전력 에너지이다. 즉, GPU와 HBM과 같은 칩셋이나 LLM과 같은 AI 모델 이전에 전력 문제가 AI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 없이는 지속가능한 AI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른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와 달리 에너지 생산과 공급 방식은 국가별로 파편화되어 있다. 각국은 자국의 자원, 지형적 조건, 정치적 판단에 따라 발전 방식을 다르게 채택한다. 한국은 원자력과 석탄, LNG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지만 유럽 국가들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중국은 석탄 발전의 비중이 여전히 높으며 미국은 천연가스와 재생에너지가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각국의 AI 산업 경쟁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전력의 생산뿐만 아니라 송배전망 구축과 운영 방식도 각기 다르며 이는 국가별 전략 자산으로 관리된다. 국가 전략 차원에서 송배전 인프라가 관리되는 이유는 전기가 AI 산업뿐 아니라 모든 국가 산업 및 안보에 필수적인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뛰어난 AI 반도체를 확보하고 있어도 실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
AI 산업에서 에너지 문제는 단순히 양적인 공급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에는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글로벌 경쟁력과 직접 연결된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탄소 중립과 ESG 기준을 강화하면서 AI 데이터센터 또한 재생에너지나 친환경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에너지 정책과 AI 전략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즉, 한국의 경우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10%가 채 안되는데 글로벌로 상품을 만들어 팔려면 상품을 제조 생산하는데 들어간 에너지가 탄소 중립과 같은 글로벌 친환경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 수출 경쟁력과 시장 접근에 큰 장애가 될 수 있다.
또한 AI 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에너지 전략의 재정비가 시급하다. 에너지 자립도 제고와 친환경 전력 공급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이다. 예컨대, AI 데이터센터를 위한 별도의 친환경 전력 공급 체계를 마련하거나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그리드 기술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한, 국가 차원의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에너지 정책과 AI 산업 전략의 유기적 연계가 중요하다.
결국 AI 시대의 경쟁력은 이제 반도체의 우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너지 산업이 AI 경쟁력의 새로운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못지않게 중요한 국가적 인프라인 에너지 시스템의 혁신과 안정적 공급 전략 마련이 한국이 글로벌 AI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필수 조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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