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개 네 마리를 키우게 될 줄이야
어렸을 적 나는 단 한 번도 개를 키워본 적 없다. 부모님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서른 넘어서 개를 키우게 됐다. 그것도 네 마리나.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나는 소라, 희망, 기쁨,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닌 네 마리 개의 보호자다.
‘개’와 ‘강아지’라는 단어를 두고 우리 애들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하지만 ‘개’라고 쓰는 이유는 도시에서 일반적으로 만나게 되는 ‘팔에 쏙 안기는’ 아이들의 크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강아지라고 부르기엔 우리 애들이 제법 크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의 몸무게는 14~21킬로그램을 오간다. 아이들 중 가장 작은 사랑이가 14킬로그램, 엄마인 소라가 21킬로그램이 나간다.
내가 반려하고 있는 아이들의 정확한 품종은 진도믹스다. 세상엔 많은 반려동물이 있고, 반려견 중에서도 수많은 품종이 있지만, 내가 계속 써 내려갈 글의 제목이 〈아무튼, 개〉가 아닌 〈아무튼, 진돗개〉인 이유가 있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우리나라 토종견인 진돗개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지형을 발견했다. 때문에 앞으로의 글에선 반려견을 키우는 보호자로서의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테지만, 그 이야기 속에는 ‘진돗개’라는 특수성이 분명히 담겨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땅의 진돗개들이, 세상의 모든 반려동물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를, 그들의 삶에 좋은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이 글이 닿아 생각의 변화를 끌어낸다면, 그래서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바랄 게 없겠다.
나는 방송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재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내내 다사다난했던 10여 년의 사회생활을 했지만,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의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나의 '네 마리의 개'라고 확신한다.
심각한 글이기보다는, 한 명의 보호자가 반려견을 관찰한 애정 어린 관찰일지이자 함께 성장해 나가는 성장일지라고 봐주면 좋겠다.
그리고 미리 밝혀둔다. 나는 아이들을 멋지게 반려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어쩌면 지탄받을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하지만 용기를 내려고 한다. 아이들은 내게 이 모든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이기에, 매일 산책하듯 뚜벅뚜벅 계속 써 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