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의 만남은 운명이었던 걸까?
개들이 내게 오게 된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아빠가 은퇴를 하시고 취미인 색소폰을 연습할 겸 설렁설렁 농사를 지을 겸 마련하신 장소가 있다. 아빠의 이 힐링 아지트 바로 옆에 살던 아저씨가 제주도로 이사 간다며, 키우던 개 한 마리를 주셨다. 그리고 어떤 의도에선지 할아버지가 선뜻 그 개를 받으셨다. 내가 그 개의 존재를 알게 된 건 거의 한 달 뒤쯤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아빠가 “우리 밭에 개가 있어”라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호기심에 나는 주말에 아빠를 따라나섰고, 그렇게 처음 소라를 만났다. (당시 ‘소라’를 ‘매리’라고 불렀는데, 관련해서는 뒤에서 이야기하겠다.)
6월 초, 한창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큰 개와 큰 개의 물건들이 세트처럼 낯설게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소라는 상상 이상으로 엄청 크게 보였다. (지금 내 눈에 소라는 절대 커 보이지 않는다. 소라를 무섭게 느끼던 마음이 소라가 커 보이게 만들었을 거 같다.) 그래서 엄청 나이가 많은 개라고 생각했고, 그 개는 우리를 향해 귀가 아플 정도로 “왈!왈!왈!왈!” 거세게 짖었다.
목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소라는 우리를 향해 쉬지 않고 맹렬히 짖었다. 지금 그 상황을 떠올리면,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랬을까 싶다. 우리를 무섭게 하려고가 아니라, 자신이 무서워서 짖은 거라는 걸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가족이 사라진 것도 모자라 비록 옆집이라고 하나 낯선 공간에 처음 보는 사람들 곁에 홀로 뚝 떨어져 있다니,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제대로 방어할 수 없도록 목줄이 고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소라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짖는 일밖에는 없었을 거다.
스티로폼 단열재가 넣어진 큰 개집과 소라가 목에 차고 있는 쇠줄과 그 쇠줄을 땅에 단단히 고정하는 쇠꼬챙이가 소라와 한 세트였다. 소라의 집은 원래 주인이었던 옆집 아저씨가 직접 만드신 거였고, 지금도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옆집 아저씨는 한두 달 분량의 사료를 우리에게 주고 떠났고, 우리는 하루에 두 번 그 사료를 소라에게 줬다. 아빠도 소라에게 직접 다가갈 수가 없어, 긴 막대를 이용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사료를 담은 밥그릇을 소라에게 전했다. 혹시 물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소라는 밥을 먹을 때도 경계하듯 우리를 쳐다봤고 밥을 먹으면서까지도 짖었다.
그렇게 첫 만남 후 주말에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나는 소라를 보러 갔다. 여전히 우리에겐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있었지만, 자꾸 보니 소라가 덜 무섭게 느껴졌다. 개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소라의 시선 정면에서 살짝 거리를 두고 우두커니 소라를 보며 앉아 있곤 했다. 그런 나를 소라가 쳐다보는 걸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소라에게 신뢰를 얻게 된 사건이 있다. 당시 나는 주말에 관광버스를 타고 하루 동안 우리나라 특정 여행지를 다녀오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아빠가 그날은 지방에 있는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아침에 서둘러 나갔고, 나는 “그럼 매리 밥은?” 하고 넘어갔던 거 같다. 집에 올 때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빠에게 소라 밥을 주었는지 물었는데 안 줬다고 했다. 소라가 하루 종일 굶은 것이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돌고 돌아 밤 8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에 소라를 보러 갔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소라에게 밥을 주는데, 소라가 나를 똑바로 보며 짖었다. 그런데 이번 짖음은 이전과는 달랐다.
내게는 '와줘서 고마워'로 들렸다. 이날을 기점으로 알게 됐다. 반려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걸. 아니 그들의 언어를 내가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소라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로 그 언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어떤 번역 과정도 없이 소라의 언어를 나는 실시간으로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게 바로 정답이다라는 감각이 생겼다. 이날 소라에게 신뢰를 얻은 것 같다.
그렇게 3개월쯤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소라가 나를 향해 다가왔고, 마치 자기를 쓰다듬어 달라고 하듯 머리를 숙였다. 나도 모르게 소라 머리 위에 손을 얹었고 (이쯤엔 나도 소라를 신뢰하고 있었다.) 다행히 소라가 좋아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소라의 머리를, 몸을 만질 수 있었다. 소라가 나를 물지 않는다는 게 기정사실로 입증된 순간이었다. 아직도 소라가 나를 받아들여준 그 순간이, 그 온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감동이었다. 동물과 내가 마음을 나누고 있다는 걸 처음 느낀 교감의 순간이었다.
그 후 우리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적어도 우리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소라에게 생겼던 걸까. 소라는 적극적으로 내 냄새를 맡았다. 더 이상 밥을 줄 때 막대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로 장난도 치는 사이게 되었다. (소라가 몸을 낮추고 귀를 뒤로 젖히며 마치 공격 자세를 취하듯 나에게 쉑쉑 다가온다. 그러면 나 역시 소라와 비슷한 자세로 몸을 낮추고 마치 권투하듯 소라의 볼 왼쪽을 향해 손을 뻗다가 다시 오른쪽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면 소라가 내가 뻗은 손 쪽으로 좌우로 입을 내민다.) 강아지와 장난치는 법을 누가 알려준 건 아니다. 자연스레 터득하게 됐다. 장난을 칠 때면 소라가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일부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같이 놀자고 내게 다가온 거라는 걸 나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만지는 사이가 되었지만, 소라의 삶의 반경은 여전히 1미터였다. 소라와 장난치는 사이, 자꾸만 소라의 목에 연결된 단단한 쇠줄이 걸리적거렸다.
처음에 소라를 만났을 때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어야 하나 많은 고민을 했는데, 오빠가 할머니 동네 이름인 '강매리'에서 따서 '매리'라고 지어줬다. 그런데 우리가 매리를 키우고 1년이 좀 지났을 때 불쑥 누가 나타났다. 바로 제주도로 간 옆집 아저씨, 매리의 원래 주인이었다. 그분이 매리를 소라라고 불렀다. 우리는 벙쩠다.
"얘가 소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