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생각을 그냥 내뱉기로 했다

내향인에게 추천하는 말하기

by 진심과 열심

작년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을 보냈다. 거울 속의 나는 얼굴이 누렇게 뜨고 눈동자는 빨갛고 웃음기 하나 없는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봐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 그 자체였다. 나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첫 심리 상담

계속 그대로 있다가는 내가 너무 위험하다고 자각했을 무렵 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검색했다. 집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을 네이버 사전 예약으로 조용히 예약했다. 전화로 예약 시간을 묻고 할 용기가 없었다.

토요일 오후 한적한 시간, 아이들 산책을 마치고 집에는 잠깐 가볼 곳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밖에 나섰다. 일찍 도착했는데 주변을 계속 배회했다.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시간이 임박했을 무렵 손을 깨끗이 씻고 마음을 다잡고 상담소에 들어갔다. 모든 게 낯설어서 긴장했는데, 다행히 선생님께서 잘 맞아주셨고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옆방에서 오열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고 덩달아 위축되었는데, 나도 같은 처지구나 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선생님께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었을 무렵 눈물을 터뜨렸다. 자연스레 선생님 책상 위에 놓인 휴지를 집었다.

토요일에 낯선 건물 한 공간에서 안전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울먹이며 내 깊은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현실이 억울하고 슬펐다. 그래도 잘해보려고 애써왔는데 결국 맞이한 건 이렇게 만신창이인 나라는 사실이 과거의 나에게 미안했다. 과거의 나는 이런 미래를 전혀 그리지 않았을 테니까.

4주간 총 네 번의 상담을 받았다. 물론 더 받아야 하는 게 나았을 테지만 선생님께서 상담 첫 시간에 진단해주신 내게 ‘트리거trigger’로 작용한 사건이 현실에서는 마무리되었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선생님이 ‘종결’이라는 말을 꺼내셨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

상담하며 여러 검사지를 작성했고 부모님과의 관계나 어린 시절 성장 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눴다. 검사 결과 선생님께선 내게 ‘만성 우울증 코드’가 떠 있는데 정신과병원에선 약을 처방했겠지만, 심리 상담에선 이대로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살짝 충격을 받았지만, 그 정도로 힘들었구나 하고 오히려 내 상태를 알게 되어서 좋았다.

선생님께서 내게 내리신 진단은 ‘표현하지 않음’으로 인한 문제였다.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관망’이었고, 어떤 관계에서도 나는 항상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뿐 나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살면서 ‘싫다’는 의사 표현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실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어도, 그 일이 나를 몇 주간 괴롭혔더라도 가족 외의 사람에게 “네가 이래서 나는 상처받았어”와 같은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이 표현하지 못한 것들이 찰랑찰랑 쌓여서 넘치기 직전이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표현 방식 몇 가지를 추천해주셨다. 싫은 사람을 종이에 써두었다가 눈에 보이는 자극으로 찢어버리는 것도 있었고, “나는 이렇게 느껴”라고 내 감정을 중심에 두고 ‘아이 메시지I message’로 말하는 것도 있었다. 또 신뢰하는 사람들과 각자의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져보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그때부터 나를 표현하는 게 가장 큰 숙제이자 화두가 되었다.


‘들러리’ 같은 사람

작년에 힘들었던 시간 동안 새로운 일을 거의 시작하지 못했다. 워낙 지쳐 있었기에 그 어떤 욕망도 욕구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를 바랐을 뿐이다. 작년에 유일하게 설정한 목표는 단 하나, ‘생존’이었다. 그냥 내가 숨을 쉬고 있다면 목표를 이룬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쉬게 해주고 또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를 만났다. 월요일 출근 전에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이자 힘이었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사회적 가면을 장착한 채 엷은 미소를 짓는 주인공 미정이 내 모습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내 안에 깊이 함몰하는 성향의 아이였고, 조용하다는 수식어가 항상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이야 내 기질을 인정하고 오히려 장점으로 쓰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말이 없다는 어른들의 무심한 피드백이 큰 상처였다.

언제나 먼저 말을 꺼내는 게 조심스러웠다. 제법 친한 관계에서라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적당히 리액션하며 맞추어주는 역할을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들러리 같은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나의 해방일지〉 9화에서는 구씨와 걸어가던 미정이 머릿속 생각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내뱉는 장면이 나온다.


ⓒ 〈나의 해방일지〉

미정 이런 동네에선 아침마다 하나씩 시체를 마주해요. 족제비가 먹다가 만 쥐 대가리, 물통에 빠져 죽은 다람쥐… 옛날엔 제일 많이 본 게 개구리 시체였는데, 지금은 논이 없어서. (멈춰서 밭을 보며) 집 주변으로 다 논이었을 땐, 개구리들이 밤이면 길을 건너서 이쪽 논에서 저쪽 논으로 건너가는데, 그때 차가 지나가면… 두두두둑… 터지는 소리가 들려요.


구씨는 얼굴이 일그러지는데, 미정은 그걸 모르고 계속 얘기.


미정 (그 밤을 생각하는 듯한 눈빛) 조용한 밤에 두둑두둑… (공기 빨리는 소리 나게 음료수를 쪽쪽 빨아 먹고) 아침에 나와서 보면 개구리들이 종잇장처럼 바닥에 여기저기…


구씨 (얘 뭐니 싶은)


미정 근데 왜 밤에 건너나 몰라. 낮엔… 발이 뜨거운가? (또 공기 빨리는 소리. 그러다가 뒤늦게 구씨의 표정을 보고.)


구씨가 앞장서 가고, 미정은 따라가는 모습에


장소는 미정 회사의 행복지원센터로 전환되고, 행복지원센터에서 일하는 향기에게 미정은 이런 말을 한다.


미정 예전엔 시키는 말 외에는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누가 내 얘기를 듣고 싶어 할까? 근데… 이젠 머릿속에 떠오른 얘기를 그냥 해요. 그냥… 나와요… 그러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 올라와요. (쭈뼛쭈뼛 어렵게) 갑자기… 내가 사랑스러워요.



미정의 대사를 듣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했다. 아, 나를 살리는 방법은 ‘머릿속 떠오른 생각을 그냥 그대로 이야기하는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 역시 미정처럼 사람들이 별로 내 이야기에 관심 없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내가 지나온 일상이, 내가 중요하고 재미있다고 여긴 발견이 나에게만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련되지도 않았고, 내 생각을 알게 되면 오히려 나를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으니까. 그래서 적당히 통용되는 말만 해왔다.


변곡점 만들기

이런 내가 미정의 이 대사를 기점으로 달라졌다. 이제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이 얘기를 해도 되나 망설여질 때도, 그냥 한다. 내 머릿속 생각을 검열하지 않고 내뱉는다. 내가 안정감을 느끼는 상대라면 더더욱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덕분에 우울감도 많이 해소됐다. 실은 최근에 우울한 기분을 거의 느낀 적 없다.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한 다섯 살쯤부터도 ‘굳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행복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던 염세적인 아이였는데, 지금은 인생 최대의 해방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 다행히 내 생각을 듣기 원하는 사람들이, 나의 변화를 더욱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다정하게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내 실수도, 민낯의 감정도, 힘들었던 마음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내겐 기적 같은 일이다.

이 브런치 공간 역시 그중의 하나다. 내 얘기를 시작하고 나니 삶이 덜 심각해지고 가뿐해진다. 상담 선생님께서 진단해주신 것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욕구가 켜켜이 쌓여 우울감을 만들었던 거 같다. 〈나의 해방일지〉는 내 삶에 큰 변곡점을 만들어주었다. 겉모습은 같을지라도 작년과 올해의 나는 다른 사람임을 느낀다.

상처주지 않는 말이라면 머릿속 생각을 그냥 내뱉어보자. 오히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돼 관계도 깊어진다. 무엇보다 미정이 그랬듯 내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변곡점을 만들었으면 하고 마음 깊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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