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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Jul 24. 2023

안녕 진도믹스 친구들

K-진돗개의 삶

소라는 진도에서 왔다. 혈통 증명서는 없고 소라의 원래 주인이었던 옆집 아저씨가 소라가 아기 때 직접 진도에 가서 30만 원을 주고 사 왔다고 하셨다. 아저씨의 말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소라의 엄마가 진돗개이고, 아빠가 풍산개라고 하셨던 거 같다. 그러니 소라의 정확한 품종은 ‘진도믹스’인 거다. 풍산개의 유전자가 있어서 그런지 소라는 다른 진돗개들보다 조금 더 체구가 큰 편이다. 소라와 모르는 개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아이들의 품종 역시 ‘진도믹스’다.

병원에 갈 때나, 산책할 때 누군가 아이들의 품종을 물으면 그냥 ‘진돗개’라고 이야기한다. 진도에서 혈통 증명서로 관리되는 아이들 역시 백 퍼센트 순수 혈통이 아닐 수 있고, 이 ‘순혈’이란 개념 자체가 애당초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개가 다 그러하듯 진돗개 역시 그 탄생의 기본은 풀어 키우기, 즉 방사의 산물입니다. 자연에 맡겨 키운 것이란 의미입니다. 1980년대 들어 진돗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아끼는 개가 상할까 집안에 가두어 키우기 시작하기 전엔 진도의 개들은 풀려서 살았습니다. 그중 가장 강하고 현명하며 자상한 수컷이 대장이 되었고 그런 대장의 자식들이 번식되었고 그 번식된 아이 중 주인의 마음에 드는 아이들이 살아남았습니다.  - 《우리개 이야기》, 7쪽


대한민국 진돗개의 다이내믹한 삶

진돗개는 우리나라 국견, 토종견인 만큼 한국에 가장 많은 개다. 그만큼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진돗개들을 만난다. 현재 대통령이 반려하는 개로 ‘퍼스트 독’이란 호칭을 듣고 있는 ‘토리’, 〈놀면 뭐하니?〉 프로그램에 등장한 엄정화 님의 강아지 ‘슈퍼’, 이효리 님과 이상순 님을 이어준 반려견 ‘구아나’도 진돗개다. 언젠가 북악산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단독주택을 지나간 적이 있는데, 앞마당에 있는 진돗개가 나를 올려다보며 왈왈 짖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 진돗개 친구들을 볼 때면 기쁘면서도 만감이 교차한다.


가장 많다는 건 그만큼 흔하다는 걸 의미한다. 천연기념물 53호로 지정된 사실이 무색하게 진돗개는 한국에서 가장 천대받는 개이기도 하다. 유기견과 식용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조되어 지자체 보호소에 가게 돼도, 입양 가지 못하고 끝내 안락사당하는 경우가 많다. 크기가 크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품종견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라와 닮은 소라 같은 아이들

아이들을 산책할 때면 “개 삽니다”라는 확성기 소리를 듣곤 한다. 놀라는 마음에 아이들을 뒤로 감추고 그 소리가 나는 곳을 보면, 평범한 SUV 차량이 돌아다닌다. 우리가 ‘개장수’ 하면 으레 떠올리는 허름한 트럭이 아니라 멀끔한 SUV 차량 위에 캔넬이 올라가 있다. 누군가 보면 강아지와 여행 다니는 사람의 차인 줄 알 거다.

개 농장의 실태를 보여주는 영상을 볼 때면 시선을 외면하게 된다. 괴로운 장면이 나와서만이 아니라 소라 같은 친구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예민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두가 비슷하게 닮았다. 내겐 소라가 아무런 희망 없는 눈으로 울부짖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들과 산책할 때면 산책 줄이 생명 줄처럼 느껴진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방심해서 이 줄을 놓치게 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우리가 매일 오가는 40분가량의 산책 코스에서도 여섯 마리의 진돗개 친구들을 본다. 여전히 쇠줄에 묶여 있는 개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주인 없이 홀로 그곳을 지킨다. 어떤 아이는 동그란 얼굴이 귀여운 희망이를 닮았고,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한 사랑이를 닮은 아이도 있고, 털이 진하고 의젓한 기쁨이를 닮은 친구도 있다. 이 아이들이 나를 빤히 쳐다볼 때면, 미안한 마음에 그 맑고 예쁜 눈을 계속 바라보기 어렵다. ‘건강하게만 지내렴’ 하고 마음속으로 빌며 지나갈 뿐이다.      


우리와 같은 존재들

진돗개들이 다른 품종의 개들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흔하기’ 때문일 거다.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그러니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해외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잘사는 진돗개들을 보면 좋으면서도 여러 생각이 든다. 만약 우리가 너무 흔한 존재라고 차별당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그런데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도 우리가 지닌 능력이 특이하고 희귀할수록 더 대접받으니까. 대상이 강아지가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모두가 기질과 성격이 다른 고유한 존재라는 것을. 네 마리의 개를 반려하면서 더 크게 깨닫게 되었다.      


소라와 희망, 사랑과 기쁨. '고유固有'라는 단어는 '굳게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 단단한 특별함을 발견하고 아껴주자.


작년에 늦은 시각 퇴근하며 회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백구 한 마리를 보았다. 소변을 보던 백구가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다리 하나가 없었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백구는 아무렇지 않게 걸었고 산책 줄을 잡고 있는 보호자도 전혀 백구에게 다리 하나가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았다.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상처가 있어도 저렇게 의연할 수 있는 거구나, 남은 세 다리로 튼튼하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그날 그 백구를 보며 많은 힘을 받았다.


그로부터 거의 일 년의 시간이 지나 마감 날 점심에 팀장님의 배려로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에 갔다. 동물 동반이 가능한 비건 식당이라, 우리 바로 옆 테이블에 하얀색 개가 누워 있었다. 보채지 않고 얌전하게 보호자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기에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낯이 익었다. 일 년 전 나에게 용기를 준 그 백구였다. 이번에도 보호자는 의연하게 반려견을 대했고, 보호자의 든든한 사랑 안에서 백구는 편안해 보였다.      


진돗개를 향한 오래된 오해

진돗개에겐 “충섬심이 높아 원래 주인만을 섬긴다”는 오해가 있다. 진돗개가 충섬심이 높은 건 맞다. 그런데 원래 주인보다 더 많은 사랑을 주면 진돗개 역시 새로운 주인을 사랑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 가족과 소라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사연을 지녔든 그 존재 자체를 예뻐하고 사랑해주면 그 대상도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준다.

진돗개 수백 마리를 기르며 300마리 가까운 아이들의 탄생과 성장, 죽음을 지켜본 분이 쓴 《우리개 이야기》란 책에는 진돗개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가 나온다. 그중 이 이야기를 접하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 할아버지와 유독 관계가 돈독했던 ‘하늘이’란 이름의 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 무덤에 가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살면서 주인을 따라 먼 길을 떠난 아이들을 흔하진 않았지만 보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난 늘 말합니다. “진돗개를 길들였다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 진돗개는 주인의 죽음을 압니다. 그리고 때론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도 합니다. -215쪽     
우린 아이들을 기르며 우리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사랑을 준다고만 착각하지만 우리가 주는 사랑 그 몇 배를 돌려받는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근본적으로 외로운 우릴 어쩌면 살게 하고 있다는 사실도… 우린 우리가 개를 기른다 생각하지만 때론 개 때문에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78쪽

    

더 이상 진돗개 친구들을 보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를 포함해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존중받기를, 사랑받기를 온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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