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의 진실
소라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하재영 작가님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란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번식장에서부터 경매장, 보호소, 개농장, 도살장에 이르는 각각의 장소에서 개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책이었다. 당시 처음 접한 사실들에 온몸이 얼얼했고, 책을 읽으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이 책은 내게 그런 책으로 남았다. ‘너무 좋아하는데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는 책.’ 워낙 구성도 치밀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도 많고, 개가 처한 현실에 관한 정보가 꼼꼼히 담겨 있기에 꼭 다시 읽고 싶었다. 그리고 5년 만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을 펼쳤다.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최대한 담담하게 읽어 내려가려고 했는데, 결국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울지 않는 걸 실패했다. 눈물이 툭 떨어졌다. 잊어버렸던 문장들이 다시금 선명히 들어왔고 여전히 그대로인 현실이 슬펐다. 중간중간 창밖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하재영 작가님이 남양주에 있는 어느 개농장을 방문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개들이 짖는 소리를 감추려고 최대치로 음량을 높인 스피커에선 비극적인 공간과는 대조적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팝송이 쩌렁쩌렁하게 울리고, 그 소리 사이에 개들의 울부짖음이 코러스처럼 끼어들어 간다고 개농장의 전경을 생생하게 묘사하셨다.
개농장의 개들은 땅에서 50센티미터 정도 떨어진 ‘뜬장’이라 불리는 곳에 주로 갇혀 있는데, 이 뜬장은 사방이 뻥 뚫려 있어 추위와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되기에 ‘뻥개장’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 뻥개장 하나엔 개가 일고여덟 마리씩 들어가 있고, 개들이 배변하면 바닥면 격자 구멍 사이로 배설물이 빠지는 구조다. 그 배설물은 몇 년간 치우지 않은 채 가득 쌓여 구더기가 우글거리고, 그곳엔 갓 태어난 새끼까지 빠져 죽어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개의 후각 능력은 인간의 수천수만배에 달한다. 사람은 많은 것을 시각에 의존해서 판단하지만 개들은 인지와 소통에서 후각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히 높다. 그들에게는 이곳에서 숨 쉬고 있는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12쪽
개농장의 뜬장이야 알고 있었지만, 개농장의 냉장고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다. 냉장고 안에는 ‘개소주’ 재료가 들어 있는데, 개소주로 담가지는 개들의 존재를 알고 경악했다.
큰 개들만 먹는 게 아니야. 시골 가면 발바리도 많잖아. 이삼 킬로그램짜리 요크셔테리어나 치와와도 한두 사람 먹기 딱 좋다고 잡아먹는 게 한국 사람들이야. 발바리는 말해서 뭐해. 또 작은 개가 양은 적어도 맛은 더 좋다고 도살장 가면 작은 개만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거기다 개고기만 먹는 게 아니라 개소주도 먹잖아. 개소주 재료는 다 소형견이야. -154쪽
우리가 도시에서 만나는 작고 예쁜 강아지들도 품종에 상관없이 버려지거나, 잃어버리면 개소주 재료가 되고 있었다.
‘포메라니안’ 품종의 강아지를 키우는 부모님의 한 지인분이 떠올랐다. 자기 반려견을 무척 예뻐하시면서도 복날 때마다 개고기를 챙겨서 드시는 분이다. 아마 그분께서는 반려견과 식용견은 태생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다. 그분께 말씀드리고 싶다. 먹는 개와 기르는 개는 다르지 않다고, 외모도 크기도 전혀 상관이 없다라고….
가정에서 반려견으로 사랑받는 개들, 그래서 더 이상 사람 손길을 갈구하지 않는 개들, 옷 입고 산책 다니는 개들, 여기 있는 개들이 그 개들과 뭐가 달라? 하다못해 같은 유기견이라도 쉼터나 입양센터에서 돌봄을 받는 개들과는 또 뭐가 달라? 얘들이 잘못한 게 뭐야? 무슨 죄가 있어? -152, 153쪽
이제는 “(펫숍에서) 사지 말고 (유기견을) 입양하세요”라는 캠페인이 제법 알려졌지만, 여전히 동물병원에서도 강아지를 팔고 있는 현실을 마주한다. 강아지는 공산품이 아닌 생명체이기에, 이 인형처럼 작고 예쁜 강아지들을 낳아준 부모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강아지들의 엄마와 아빠는 누구일까?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번식장에서 모견은 강제 교배를 당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며, 매번 새끼를 빼앗긴다. 이렇게 끊임없이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한 뒤 일고여덟 살쯤 되면 암이든 자궁축농증이든 장기가 망가질 대로 다 망가지고 영혼이 박살 나서야 비로소 번식장을 벗어날 수 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될까? 앞에서 말한 대로 도살업자의 손에 넘겨진 뒤 개소주로 담가진다.
사람들은 이곳을 강아지 공장이라 부른다.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 번식장에서는 강아지를 생산한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것은 기계지만 번식장에서 강아지를 찍어내는 것은 모성을 가진 엄마 개다. 생명을 다룬다고 해서 여기가 공장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엄마아빠 개는 기계보다 나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65쪽
며칠 전에 차를 끌고 아침에 아이들을 산책시키러 가는데, 한 백구가 천진하게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 다행히 목줄은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창문을 내려서 “아가 어디가?”라고 물었다. 나를 쓱 쳐다보던 개는 다시 힘차게 앞을 향해 뛰었다. 그렇게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 아이의 전후 상황을 알지 못한다. 자발적으로 집 밖에 나왔다면, 잠시 자유를 만끽하다가 집에 돌아가면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개농장 운영자에게 잡히거나 유기견 보호소에 맡겨지는 상황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이럴 때마다 가장 고민이 되는 부분은 ‘유기견 보호소에 구조 요청을 해서 보호소에 보내는 게 이 아이의 삶에 더 좋을까?’라는 점이다. 입양되는 소수의 개를 제외하면 공고 기간인 10일이 지나서 안락사당하거나, 보호소에서 평생 ‘무기 징역수’처럼 살다가 그 안에서 죽는 현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신고해서 이 아이가 안락사당한다면, 이 아이를 죽게 할 권한이 나에게 있는 걸까?
보호소에서 유기 동물을 안락사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버려지는 동물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안락사와 달리, 동물의 안락사는 편안함에 이르는 게 아니라 독극물을 투여하는 행위뿐일 수 있다. 안락사시킬 때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는 보호소가 많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의 전부를 다 걸어서 절박한 심정으로 보호소를 운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책에는 지자체에서 보조금은 받을 대로 받고, 안락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개도살업자에게 개를 넘기는 사례도 나온다.
이렇듯 어떤 이유로든 개들이 버려지면 그 끝은 결국 비참한 현실뿐이다. 책에는 ‘경매장’이란 곳도 나온다. 이 경매장은 “세상의 어떤 개도 팔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출산 능력이 떨어진 모견, 생식을 못 하게 된 종견, 늙은 개, 병든 개…를 상자에 다 때려놓고 ‘우라통’으로 경매한다고 한다. 이 애잔한 생명들의 비용은 고작 한 상자에 7만 원에서 10만 원 선이다.
폐견을 낙찰받는 사람은 당연히 개장수이고, 데려가 바로 죽이고 작업해서 개소줏집이나 개고기집에 납품한다고 한다.
이제 올해 여름은 초복, 중복을 지나 말복만을 앞두고 있다. 올해에도 ‘몸보신’을 이유로 분명 적지 않은 개들이 죽었을 거다. 이 개들을 드신 분들께 간명한 사실 하나만 전하고 싶다. ‘당신들의 몸은 절대 몸보신이 되지 않았다’라고. 반론한다면, 당신이 먹은 그 개의 원산지를 아는지 물어보고 싶다. 그 개가 무엇을 먹고, 어떻게 키워졌으며,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는지 아느냐고 말이다. 다른 ‘고기’와 달리, 개고기의 원산지는 아무도 검증하지 않는다.
개농장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사료를 먹이는 개농장은 없”다. 그들은 “상해서 거품이 부글부글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사료로 사용한다. (…) ‘음식물 쓰레기’와 ‘남은 음식물(잔반)’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음식물 쓰레기에 방점을 찍는다면 음식물이 아니라 쓰레기에 찍어야 한다. 이 쓰레기는 단순히 “사람이 남긴 음식 부산물이 아니다.” 담배꽁초, 이쑤시개, 물티슈, 플라스틱 조각, 머리카락, 식품 방부제 같은 이물질이 걸러지지 않고, 불특정다수의 타액까지 섞인 폐기물을 뜻한다. -192쪽
최근 민간에서 첫 개고기 위생 검사가 있었다. 2017년 6월에서 8월 사이에 동물자유연대와 건국대학교 수의대가 전국 12개 지역의 전통시장에서 판매하는 총 93개의 개고기 표본으로 실시한 검사다. 결과를 보면 전체 93개 중 61개(65.6퍼센트)에서 8종의 항생제가 검출되었다. 항생제 잔류치는 축산물 기관에서 검사를 받는 소, 돼지, 닭보다 96배나 높았고 검출 빈도는 최대 496배나 높았다.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도 심각했다. 대장균을 비롯해 요로감염, 방광염 등이 원인균인 프로우스 불가리스, 패혈증을 일으키는 연쇄상구균 등 다양한 세균이 표본에서 검출되었다. -201쪽
개식용 문제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개가 축산법에는 포함되면서 축산물 위생관리법에는 포함되지 않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199쪽
최근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의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에 김하나 작가님은 이렇게 추천사를 쓰셨다.
“누군가 내게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에 보급할 책 한 권을 고른다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고를 것이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나도 이 책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닿아, 법과 시스템의 변화를 이뤄내 이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빠르게 개선되기를 바랄 뿐이다.
초판의 뒤표지에는 이런 카피 문구가 적혀 있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사람은 안 불쌍해?"하고 논쟁을 촉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답변해 줄 수 있는 가장 적확한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는 가장 나은 처지인 반려동물이자 최악의 처지일 수밖에 없는 식용동물이다. 동종의 동물을 가족이자 음식으로 바라보는 상반된 관점이 대립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우리가 어디까지 연민을 확장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가장 가까운 동물과 가장 먼 동물 사이의 가교가 되길 바랐다. -53쪽
나는 개들이 동물의 전도사 같습니다. 이 녀석들이 우리 곁에서 사람과 동물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239쪽
개라는 동물이 참 희한합니다. 동종의 부모나 형제보다 사람인 나를 더 좋아하고 의지해요. 동종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는 동물은 개밖에 없을 거예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동종과 싸우다 죽을 수 있는 동물이 개입니다. 그리고 이건 견종과 상관이 없어요. 반려견이라고 하는 품종견이나 똥개라고 하는 믹스견이나, 개들은 다 그렇습니다. -239쪽
작가님께서는 이 책을 우연히 ‘피피’라는 강아지를 키우게 된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하셨다. 나도 나의 네 마리 개로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 개들의 든든한 보호막, 안전한 울타리가 되는 것을 시작으로 조금씩 나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틈틈이 이 책을 자주 읽어볼 요량이다. 그렇게라도 이 비극적인 현실을 적어도 눈 감고 있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