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동물이 건네는 위로
오늘은 내게 역사적인 날이다. 운전해서 서울 한복판에 있는 회사에 출근했다. 10여 년의 장롱면허를 끝내고 서른다섯 시간의 주행 연수를 마치고 드디어 이날을 맞이했다.
오전엔 일 관련해서 기쁜 메일도 받았고, 점심엔 팀 분들과 오랜만에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것도 먹고 그렇게 기분 좋게 오후를 보내고 있었는데, 큰 실수를 발견했다. 마감을 코앞에 둔 상황이라 과연 수습할 수 있을지 머리가 얼얼했다. 잘하고 싶었는데 왜 그전엔 신경 쓰지 않았을까 나 자신이 한심했다.
수습해야 할 일이 가득했지만, 아직 야간 운전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서둘러 퇴근해야지 싶었다. 그렇게 차에 시동을 거는데, 우리 사총사 얼굴이 아른거렸다. 오늘은 비가 와서 아침 산책을 하러 가지 못했기에 아이들이 더더욱 보고 싶었다. 집이 아닌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목적지를 설정했다.
꽉 막혔던 도로가 서울을 벗어나니 뻥 뚫렸는데, 여전히 내 속은 답답하기만 했다. 출발할 때부터 들었던 오디오북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른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50분 정도를 달려서 아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나를 보고 놀랄까 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예상치 못한 나의 등장에 아이들은 혼비백산한 표정이었지만, 곧 반가워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나 역시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기운이 났다. 평소 아이들과 있을 때면 산책 전용 옷으로 갈아입는데, 출근할 때 입었던 연보라색 원피스 차림 그대로 아이들 집에 들어갔다. 그러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 명이 동시에 달려와 내게 안겼다. 손이 두 개밖에 없기에 누구라도 서운하게 느끼지 않도록 이리저리 정신없이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아기들에 비해 무뚝뚝한 소라가 오늘따라 유달리 계속 애교를 부렸다. 소라의 몸 구석구석을 만질 기회는 흔치 않아서, 웃으며 한참 소라를 쓰다듬어주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이들은 하늘이 내게 보내준 천사일지도 몰라.’
이렇게 깨닫는 순간 내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오랜만에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소리 내어 울었다.
신이 있다고 믿지만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다. 멀리서 나를 지켜주고,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신’이라면, 강아지란 존재가 내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속눈썹이 부르르 떨릴 만큼 아이들은 내 손길을 그대로 느끼고, 일부러 내 곁에 와서 눕는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확실하게 ‘교감의 순간’을 느낀다. 마음을 나누고 치유 받는다. 그렇게 아이들은 내가 더는 슬퍼하지 않도록, 다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강아지교가 실제론 없더라도, 나의 네 마리의 개를, 세상의 모든 강아지를 믿는다. 이들은 늘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며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줄 테니까.
최근에 동료들과 우리 앞에 펼쳐질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외부 환경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통제할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그렇게 나를 단련하자고 다짐했다.
매일 줄넘기 천 번, 일주일에 한 번은 브런치에 글쓰기, 맡은 바 꼼꼼하게 일하기, 친절한 사람 되기, 가급적 주변에 좋은 영향 미치기, 운전해서 어디든 가기…. 이렇게 일상을 유지하려는 애씀 안에 힘듦도 함께 있었나 보다. 긴장, 불안, 지침… 모른척해왔던 감정들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아이들의 털을 계속 쓰다듬으며 그렇게 40여 분의 시간을 보내고서야 요동치던 마음이 진정됐다.
이제 아이들이 보고 싶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 퇴근 후에도 아이들로 인해 충전할 수 있다. 아이들도 나도 좋은 곳에 많이 데려가자. 내겐 어디를 달리든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강아지교’가 안전하게 지켜줄 거란 믿음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