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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Sep 10. 2023

산책을 하고 싶어서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어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지 못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이주일 전, 즐거운 나들이를 다녀온 날 너무 신나서 뛰다가 살짝 넘어졌다. 넘어지면서 발목을 삐끗하긴 했는데 내게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기에 대수롭지 않게 툭툭 일어났다. 다음 날 아침에 오른쪽 발 복숭아뼈가 부어 있었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가라앉겠지 싶었다. 평소처럼 매일 아침에 아이들 산책을 하고 줄넘기도 하며, 마감 때 사무실 안을 분주히 다녔고 인쇄 감리도 다녀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꼬박 일주일이 흘렀는데 여전히 오른쪽 발의 붓기는 그대로였다.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토요일 아침에 정형외과를 찾아갔고, 의사 선생님께서 초음파 기계로 발을 살펴보시더니 인대가 파열됐다고 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여서 당황스러웠다. 선생님께서는 반깁스를 하며 상황을 지켜보자고 하셨다. 과잉 진료가 없는 병원이라 특별한 처방 약도 치료도 없었다. 모든 건 내가 나를 잘 관리하는 데 달려 있었다.


내게 귀여운 오리발이 생겼다

병원에 간 날 아침에도 아이들 산책을 했고 줄넘기는 60번 정도밖에 완수하지 못한 터라 “줄넘기해도 되나요?” 하고 선생님께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어휴 당분간 운동은 생각지도 마세요”라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다. 석고 깁스가 아닌 반깁스였지만, 깁스를 해본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답답하지는 않은데 걸을 때마다 불편했다. 뒤뚱거리며 걷는 게 아직도 영 이상하다.

회사 동료분들을 만날 때마다 발을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다들 걱정스레 물어보시면서 근데 깁스가 엄청 귀엽다고 하셨다. 이렇게 자신감을 얻었기에 귀여운 오리발을 내밀며 당당히 뚜벅뚜벅 잘 걸어 다니고 있다. 그래도 활동 반경이 훨씬 줄어들었다. 가급적 먼 거리는 걷지 않고 있다.


산책이라는 특권

엄마에게 아이들 산책을 천천히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가 야단맞았다. 네 몸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고 따끔하게 한마디 하셨다. 그래서 아이들의 모든 산책을 엄마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 2개월 동안 매일 아침 아이들과 산책하고 줄넘기하는 루틴이 겨우 몸에 익었는데 모든 게 한순간에 일시 정지됐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산책도 아무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호자도 반려견도 몸이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거였다.

한편으론 반성도 했다. 산책하던 모든 날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피곤할 때면 의무감에 숙제하는 마음으로 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하루 두 번의 산책은 어쩌면 그날의 전부이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이제는 정말로 산책하는 모든 순간을 기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항상 무언가를 잃은 후에야 비로소 소중한 걸 깨닫는다. 몸은 나의 큰 자산이었다. 이번에 깁스를 풀게 되면 아이들 산책을 원 없이 해줘야지 하고 여러 번 다짐했다.


일주일의 피로가 풀리는 시간

깁스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니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깁스한 내 다리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엄마인 소라는 계속 곁에 머물며 내 다리에 몇 번이나 코를 갖다 댔다. 이렇게 아이들에게 다정한 관심을 받았다.

반깁스를 한 뒤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미팅도 다녀오고 마감한 책의 보도자료도 완성했다. 노곤노곤 일주일 치 피로가 쌓였는지, 토요일 오전에 병원에서 경과를 살펴보고 돌아와 아이들 배를 만져주다가 아이들 집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 가을 선선한 바람이 부채질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솔솔 잠들었는데 아이들 중 누군가 내 목뒤에 뽀뽀를 해주었다. 긴장했던 모든 게 누그러지는 시간. 일주일의 피로가 싹 씻긴 느낌이었다. 너무 포근해서 온천여행을 다녀온 것 같았다. 무척 평온해서 호사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나를 지켜야 아이들도 지킬 수 있어

원래 산책 순서는 내가 희망이와 기쁨이를 데리고 먼저 나서면, 간격을 두고 엄마가 소라와 사랑이와 함께 뒤따라오셨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가 아이들 산책을 모두 전담하시니 소라와 사랑이를 먼저 데리고 나서면 희망이와 기쁨이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먼저 나가려고 한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 언니가 얼른 나을게” 하고 쓰다듬어주었다.

선배가 반깁스한 나를 보더니 우스갯소리로 이제 넘어지면 인대가 파열되는 나이가 되었다고, 낙법을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 조금 지나면 인대가 아니라 뼈가 부러진다고.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 자신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건강관리를 잘하자, 체력 관리를 잘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야 산책도 할 수 있다.

반깁스를 풀면 가장 하고 싶은 것도 산책이다. 이제 다음 주가 되면, 내게 별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이들 산책을 조금씩 시작할 수 있다. 벌써 두근거린다. 그러면서 또 깨닫는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어.’     


기쁨이와 오리발. 이제 일주일만 기다리면 우리 함께 산책할 수 있어. 더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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