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과 열심 Jul 01. 2023

소라·희망·기쁨·사랑 각각의 보석 이야기

아이들이 태어나기까지

앞선 글에 썼듯이 소라의 중성화 수술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우리 가족은 소라가 출산하기 직전이 되어서야 소라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조금씩 살이 찐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뒤태가 둥글어진 소라를 발견하고 그제야 눈치챘다. 소라의 나이 3살 때였다. 개의 임신 기간은 약 2개월 정도로 매우 짧다. 개의 생리 기간은 일 년에 두 번(개의 크기마다 다를 수 있다), 봄과 가을 털갈이하는 무렵이고 거의 한 달 동안 한다.

이 기간에도 소라를 데리고 먼 곳으로 산책을 다녔고(이러면 안 된다), 아마도 소라가 멀리 있는 개들까지 끌어들였을 거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기쁨이처럼 검은색 털을 지닌 아이가 둘, 소라를 닮은 백구가 셋 태어난 것을 보면 아이들의 아빠가 기쁨이처럼 생긴 친구가 아닐지 추측할 뿐이다.

2020년 12월 12일 새벽 5시 소라는 맑은 하울링을 시작으로 아침 9시까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다. 다섯 마리 중 두 마리를 아빠가 아는 분께 입양 보냈고 희망, 기쁨, 사랑이를 키우게 됐다. 이 공간에는 소라를 비롯한 아이들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보려고 한다.



든든한 엄마 소라

소라의 성격은 일단 외향적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강아지의 기질도 외향형, 내향형으로 나눌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기쁨이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E 성향이다. 아기들이 태어난 후 소라가 아기들에게서 애교를 배우는 것 같다. 출산 전에 배를 보여준 건 한 번뿐이었는데(심장사상충 치료로 병원에서 하루 자고 오던 날 딱 한 번만 해줬었다), 이제는 아이들처럼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 년에 몇 번 배를 보여준다. 나를 오랜만에 보면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다가 슬며시 뽀뽀해줄 때도 있다. 코로나19에 걸린 후 2주간 아이들을 보지 못했을 때가 특히 그랬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는 산책할 때 동분서주 여기저기 폴짝폴짝 잘 뛰어다녔는데, 요즘은 그래도 좀 점잖아진 것 같다. 아니다. 고양이를 만나면 여전히 ‘히이잉 히이잉’ 앓는 소리를 하며 나를 끌고 간다.

소라의 털은 조물주의 신비다. 하얗다기보다는 노르스름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꼬리 끝부분엔 더 진한 노란색이, 마찬가지로 뒷다리 중앙에도 진한 노란색이 정확히 대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귀는 쫑긋 섰고 귀에도 진한 노란색 포인트가 있다. 나는 소라의 콧잔등이 가장 귀여운데. 콧잔등엔 3개의 점이 좌우대칭으로 예쁘게 박혀 있다.

소라는 장난치기를 좋아한다. 애들 장난감을 물고 와서 나에게 터그 놀이를 청할 때도 있고(소라와 터그 놀이를 할 때면 도무지 끝이 안 난다…) 아이들에게도 먼저 장난을 건다. 이때 소라의 얼굴을 보면 눈은 똘망똘망하고 입은 히죽히죽 웃고 있다. 영락없는 장난꾸러기다. 아가들을 쓰다듬어주다가 소라를 안으면 너른 품만큼 포근하다. 엄마와 소라가 함께산책하고 그 뒤에 내가 따라갈 때, 내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으면 묵묵히 기다려준다. 아이들에게뿐만 아니라 내게도 소라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다.      



순수 그 자체인 희망

아가들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다. 먹는 단어로 지어야 오래 산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예쁜 단어를 붙여주고 싶었다. 희망이는 아기들 중에서 유달리 ‘희’어서 발음의 특징을 살려 희망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희망이를 볼 때면 정말로 희망 차 진다. 희망이는 좋으면 좋음을 눈으로 얼굴로 꼬리로 온몸으로 표현하기에 희망이와 발걸음을 맞출 때마다 덩달아 나도 리듬을 타며 걷게 된다.

희망이를 표현하는 또 다른 단어는 ‘로켓’이다. 간식이 있을 땐 붕붕 뛰어 내 얼굴까지 닿는다. 소라와 함께 ‘먹보 라인’이다. 산책할 때도 언덕 위아래를 오가며 방방 뛴다. 그래서 내가 지어준 별명은 ‘로켓 희망’이다. 아이들 중에 가장 몸이 커서 아이들의 대장 역할을 하려고는 하지만 병원에서는 너무 얌전하다고 한다. 꼬리를 싹 내리고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희망이는 피부가 약해 아이들 중에서 가장 병원에 많이 갔다. 발이 습진에 걸린 적도 있고 여전히 배에도 작은 뾰루지가 올라왔던 흔적이 있다. 희망이가 병원에 갈 때면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희망이를 못 가게 하려고 소라를 비롯해 우는 소리를 낸다.

겉으론 대범해 보이지만 겁이 많다. 어쩌면 삼 형제 중에서 제일 많을 수도 있다. 아가였을 때 산책을 시키려고 하면 햇빛을 피해 그림자로 숨었다. 햇빛 자체를 무서워할 수 있다는 것도 아가들을 키우며 처음 알았다.

희망이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뭐니 뭐니 해도 꼬리다. 상류층에서 장식으로 쓰는 깃털처럼 풍성하고 우아하다. 희망이의 꼬리가 수직으로 섰을 땐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눈도 진짜 예쁘다. 희망이의 눈을 가만히 쳐다보면 눈에 우주가 담겨 있는 거 같다. 그 눈으로 희망이는 너른 세상을 주시한다. 산책할 때도 다른 아이들은 땅 밑의 냄새에 주목하는데 희망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끔 코로 하늘을 감각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엄마인 소라와 산책하는 걸 무지무지 좋아하고, 소라에게 애교 만점인 효녀다.



조용한 반전 캐릭터 기쁨

기쁨이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털이 검은색이라 ‘ㄱ’을 넣어 기쁨이라 지었다. 정말 내 삶의 최고 기쁨이기도 하다. 기쁨이와는 훨씬 더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게 가능하다. 아기처럼 나에게 쏙 안기고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 치유한다.

기쁨이는 외모도 성격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백구들 무리에서 홀로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있다. 가슴팍엔 반달곰 같은 긴 별표 무늬가 있고, 네 발은 모두 흰 양말을 신었다. 어렸을 땐 귀가 둥글게 접혀 곰돌이 같더니 이제는 귀가 뾰족하게 토끼처럼 섰다.

기쁨이는 확실한 ‘I 성향’이다. 나와 같아서 기쁨이를 이해할 수 있다. 밖에 나와서 햇볕을 쬐며 자는 아이들과 달리 왜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지 말이다. 다른 아이들이 서로 엉키며 장난칠 때도 큰 관심이 없다. 오직 나를 바라본다. 내가 문밖에 있을 때면 눈앞에 있는 무언가를 물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서 내게 관심을 표현한다. 기쁨이는 내 머리 끈을 빼앗는 걸 좋아하는데, 기쁨이에게 머리 끈을 뺏기고 또 나는 되찾으려 기쁨이를 쫒고, 기쁨이는 요리조리 잘도 피하고 이게 기쁨이와의 놀이다.

기쁨이는 엄청나게 말랐다. 분명히 사랑이보다 밥과 간식을 더 먹는데 기쁨이가 더 말랐다. 허리가 쏙 들어가서 털을 빗겨줄 때면 뼈가 느껴진다. 다리도 길쭉길쭉하다. 겉 쌍꺼풀이 진한 아이들과 달리 기쁨이는 속 쌍꺼풀이 예쁘게 지어져 있다. 너무 예뻐서 자스민 공주가 연상되기도 한다. 외모 특징이 아이들과 매우 다르지만, 기쁨이의 옆얼굴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소라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기쁨이는 산책할 때도 사뿐사뿐 조신하게 걷는다. 그래서 엄마와 나는 ‘조신한 기쁨이’라고 부른다. 사랑이와 쿵짝이 잘 맞아서 산책할 때 사랑이가 딴 구경을 하다 한참 뒤에 따라오면 허리를 낮추고 은폐 엄폐하며 놀라게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반전은 남의 밥을 빼앗아 먹기를 좋아한다는 거다. 똑같은 사료를 주는 데도 소라가 밥을 먹고 있으면 뒤에서 레이저 눈빛을 쏘며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 소라가 어느새 물러나고 기쁨이가 소라 밥을 차지한다. 다른 아이들 사료도 몰래몰래 먹는 걸 좋아한다. 자기 거는 안 먹으면서.      



호기심 천재 사랑

뻔한 이름을 짓기 싫어서 되도록 ‘사랑’이라는 이름을 피하고 싶었는데, 사랑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도무지 다른 이름으로 대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다 사랑스럽다. 아이들 중에서 소라를 가장 많이 닮았다. ‘소라의 미니미’일 정도로 소라의 귀, 다리, 꼬리에 있는 진한 노란색 포인트가 모두 사랑이 몸에 그대로 있다.

겨울에 패딩을 입힐 때 혼자서 한 치수 작은 크기를 입을 정도로 사랑이는 아이들 중 가장 체구가 작은데도 가장 에너지가 많다. 산책할 때면 온 동네 이야기에 다 참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호기심이 많아 여기도 저기도 기웃댄다. 얼마 전에는 전깃줄에 거미줄로 작은 낙엽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그 낙엽의 움직임까지도 주시하고 있었다.

뛰는 속도도 엄청나다. 제법 거리가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사랑아’라고 부르면, 사랑이가 정말로 빛의 속도로 달려온다. 껑충껑충이 아니라 우다다다다다다 뛰어 어느새 내 곁에 와 있다. 생글생글 웃으며 귀가 살랑살랑 뒤로 젖히며 뛰어온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 순간이 너무나 좋다.

평소에도 먼저 다가가 희망이와 기쁨이 귀를 핥아줄 정도로 성격이 좋다. 아이들 중 먹는 것에 가장 까다로워서 조금이라도 먹기 싫으면 아무리 입에 갖다 대주어도 고개를 휙 돌린다. 그리고 맛있는 걸 들고 가면 즉시 자신에게 안전한 캔넬로 쏙 들어간다. 하루에도 여러 번 슬그머니 내 옆에 와서 다리를 들고 배를 만져주길 기다린다. 내가 딴짓하고 있을 때면 어느샌가 내 발밑에 와서 누워 있다. 이 모든 행동이 사랑스러울 뿐이다.      




얼마 전 제주도 워크숍을 다녀오자마자 아이들이 보고 싶어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캐리어를 끌고 갔다.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너무 좋아서 껑충껑충 뛰고 뽀뽀를 해주고 배도 뒤집고 난리가 났다. 진정시키는 데만 10분이 넘게 걸렸다.

아이들의 격한 환대가 아깝지 않도록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지, 나를 좀 더 멋지고 근사한 존재로 만들어줘야지 하고 다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유일하게 직구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