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한 부탁
자잘한 물건을 사는 건 좋아하지만, 명품이나 해외 브랜드에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직구를 거의 하지 않는데, 3~4개월 주기로 스위스에서 발송한 택배를 받는다.
내가 직구하는 건 아이들이 달마다 먹는 약이다. 심장사상충 약과 외부 구충약.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집은 모두가 알 것이다. 심장사상충 약이 얼마나 반려동물에게 꼭 필요한지. 특히 지금처럼 모기가 많아지기 시작하는 계절엔 더더욱 필수적이다.
심장사상충은 모기를 통해 감염된다. 모기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동물을 물면 혈액 속 유충이 모기 몸에 들어가 자라고, 그 모기가 다른 동물을 물었을 때 전염된다. 심장사상충에 걸린 강아지 심장 사진을 보면 길이가 30센티미터나 되는 실처럼 생긴 유충이 그 조그마한 강아지 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심장사상충 말기가 되면 강아지는 호흡 곤란, 혈뇨, 쇼크를 하다 결국 심장이 마비돼 급사한다.
이전에 강아지를 키운 적이 없었기에 심장사상충에 관해 무지했고, 거의 1년 정도 소라에게 약을 먹일 생각을 못 했다. 강아지 관련 정보들에 차츰 익숙해질 무렵 심장사상충을 예방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동네 약국에서 약을 사다가 먹이려고 했는데, “만약 감염되었을 때 심장사상충 약을 먹이면 강아지에게 매우 치명적”이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 병원에서 하는 간단한 키트 검사로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아예 운전을 못했으므로(지금은 동물병원은 오갈 수 있는 수준이다) 부모님을 설득해서 24시간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소라를 데려갔다. 소라의 다리에서 혈액을 채취해 심장사상충 키트 검사를 했다. 잠시 후 결과가 나와 진료 상담을 받았는데 의사분께서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무거워진 공기에 깜짝 놀랐고 소라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초기를 넘어서 중기였다. 추측해보면 소라는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었던 거 같다. 꽤 심각한 상황이었으므로 하루 종일 입원시킨 날도 있었고, 하루에 두 번씩 꾸준히 약을 먹였다. 그렇게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심장사상충 약처럼 내부를 구충하는 것 외에도 진드기 예방을 위해 외부 구충도 필요하다. 소라는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의사분께 추천받은 가장 몸에 무리가 덜 가는 조합으로 약을 먹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심장사상충과 내외부 구충이 한 번에 되는 약을 먹이고 있다.
소라의 약 조합: 하트가드+프론트라인. 하트가드에는 고기가 들어 있어 소라가 한입에 먹고 프론트라인은 액체이기에 목 뒤에 발라준다.
아이들 약: 넥스가드 스펙트라. 하트가드의 작은 버전이다. 먹이기만 하면 되는데 아이들이 잘 안 먹어 잘게 조각내 계란과 섞어준다.
‘펫버킷’이라는 사이트에서 이 약들을 직구하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거의 이 사이트를 아실 거다. 직구를 하는 이유는 동물병원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직구가 어려우면 동물 의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에서 살 수 있다.
실외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에 12월에서 1월 두 달을 제외하고 2월 말부터는 아이들에게 매달 이 약들을 먹이고 있다. 겨울에도 모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일 년 내내 먹여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약이 독하기에 매달 먹이는 건 좋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반려동물을 실내에서 키운다면 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5~9월에만 먹여도 된다고 한다.
소라와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한 지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매일 같은 공간을 걷는 동안 주변은 상당히 달라졌다. 어느 집이나 밭 앞에 갑자기 새끼 강아지가 놓이고, 그 새끼 강아지가 커가는 과정을 본다. 정확히 말하면 강아지가 새로 놓이고 또 사라지는 걸 보고 있다.
거의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눈에 선한 개가 있다.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그 개가 그곳에 놓인 첫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느 날처럼 산책하고 있었는데 트럭 위에 백구 한 마리가 있었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봤을 때 주인이 시멘트 바닥 위에 개의 쇠 목줄을 망치로 툭툭 박고 있었다. 소라의 과거가 떠올랐고 그 개의 앞날이 그려졌다. 당장 달려가 하지 못하게 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주인의 소유이기에 눈을 질끈 감은 채 돌아왔다.
산책을 할 때마다 그 개를 만났다. 몸은 소라보다 살짝 작았고 눈이 무척이나 예쁜 남자아이였다. 아이들 산책로 중간에 홀로 방치되어 있어서 이 친구가 늘 눈에 밟혔다. 주인이 제대로 식사를 챙기지 않았고 배변 본 것도 빠르게 치우지 않았다. 그래서 이 친구의 대변을 한동안 치워주다가 주인에게 걸린 적도 있었고, 몰래 간식을 주기도 하고 사료도 줬다.
그런데 별로 식욕이 없는 친구인지 잘 먹지를 않았다. 항상 사료가 그릇 밖으로 밀려 나와 있었다. 원체 말랐던 아이였는데 더 말라가는 것 같았고 언제부턴가 눈에 띄게 활동이 줄어들었다. 거의 누워만 있었다.
그 후 어느 날 이 집에 누렁이 한 마리가 더 생겼다. 나는 분노했다. 한 마리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데 강아지를 왜 더 데려왔는지 고생할 아이를 왜 더 만드는지 그 주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누렁이가 온 지 며칠 뒤 이 백구가 사라졌다. 이 백구 집을 누렁이가 사용하고 있었다. 이날 어떻게 아이들 산책을 시켰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누렁이로 원래 있던 아이를 대체했다는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심장이 벌벌 떨렸다.
가장 화났던 건 주인이 이 강아지를 단순히 외부 사람을 막는 CCTV 역할로 사용했고, 대체할 강아지를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현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백구가 심장사상충에 걸린 것 같다. 심장사상충 약을 먹이지 않으면 실외견은 백 퍼센트 심장사상충에 감염된다.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아마 5년도 살지 못할 거다. 제발 아이들 수명을 단축하지 말자. 심자사상충 약은 개에게 필수다.
소라가 심장사상충 치료를 받던 병원에선 소라의 중성화 수술비용이 100만 원이 넘게 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렇게 망설이다 아이들이 태어났다. 반려견 입양은 정말로 쉽지 않다. 부모님께서 누군가 개를 키우고 싶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을 때 개 농장이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제발 불쌍한 운명을 애초에 만들지 말자.
실외견일 경우 국가에서 무료로 중성화 수술을 해준다. ‘마당개 중성화 지원’ 사업에 신청하면 된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6개월이 넘었을 무렵 이 제도를 통해 소라를 포함해서 아이들 모두가 중성화 수술을 했고, 병원에서는 실밥을 푸는 것부터 약 처방까지 꼼꼼히 해주셨다. ‘마당개 중성화 지원’이라고 검색하면 정보가 많이 나오고 구청에 문의해도 된다.
개를 방치하며 키우는 분들께 심장사상충 약과 중성화 수술 외에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정상적인 사료를 주자. 여전히 사료가 아닌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주는 집을 본다. 파, 양파, 마늘은 강아지에게 치명적일 뿐만 아니라 간이 밴 음식 자체가 강아지에게 해롭다.
물도 매일 꼭 갈아주자. 박준 시인의 글 중에 부모님 댁 옆집에 살던, 시인이 ‘누피’라고 이름 붙여준 개 이야기를 읽고 오열했다.
“어쩌면 여름비는 짧게 묶여 있는 목마른 개들을 위해 내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 《계절 산문》 89쪽
그리고… 매일은 어려워도 산책을 고려해주면 좋겠다. 개뿐만 아니라 당신의 삶 자체가 바뀔 테니까. 당신의 일상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지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