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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만 미안하다고 말해요

닮고 또 닮은 엄마와 딸 사이

by 진심과 열심

어제 아침밥을 먹다가 매일 정성스러운 아침을 차려주는 엄마가 너무나 고마웠다. 내가 이 밥상을 받을 자격이 있나, 나는 어떻게 이렇게 엄마에게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는 걸까 싶었다. 엄마에게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마워”라고 아침 인사를 전하듯 아무렇지 않게 툭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오빠하고 너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해”라고 말했다. 뭐가 미안한가. 나는 엄마에게 지금까지 더없는 사랑을 받았는데. 내가 엄마라면 감히 따라 할 수도 없는 큰 사랑을 내게 줬는데.

그런데 내 입에서도 엄마에게 “미안해”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자주 하던 생각이었다. 엄마의 희생의 결과물이 나라는 사실이 엄마에게 미안했다. 이렇게나 멋지고 예쁜 엄마가 자신의 수많은 시간을 나라는 사람을 위해 내어줬는데, 내가 과연 그럴 만한 존재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내 대답을 듣자 “그런 소리하지 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왜 이리도 닮았을까. 그리고 서로 뭐가 그렇게 미안할까.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

엄마와 나는 외모가 별로 닮지 않았다. 엄마는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선이 예쁘다. 그에 비해 나는 조금 더 선이 굵고 날카롭게 생겼다. 좋아하는 옷 스타일도 다르다. 엄마는 화사하고 통통 튀는 색이 잘 어울리지만, 나는 어둡고 채도가 낮은 색이 어울린다. 그런데도 내가 엄마를 엄청 닮았다고 느낀다. 엄마의 성격과 습관이 내게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만 같다.

엄마와 딸 사이는 특별하다.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의 관계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른 뭔가가 분명히 있다. 나는 그 이유가 ‘여성’으로서의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키우며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았을 거고, 나는 엄마를 보며 나의 미래를 상상하니까. 아마도 우리는 비슷한 정서를 느끼고 경험해왔을 거다. 같은 슬픔을 공유하는 사이. 그래서 서로가 더 애잔하고 애틋하지 않을까.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엄마와 이야기하다 보면 어딘가 닿지 못하는 회색지대 같은 곳이 있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중에 말해줄게” 하고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늘 그 부분에 닿게 되면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쯤 되면 그때는 들려주지 않으실까 하고 어렴풋이 기대만 했다.

그런데 올해 가을 엄마가 우연찮은 일들을 겪으며, 내게 그 부분을 울면서 말해줬다. 비로소 궁금증이 풀렸다. 엄마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듣고 나니 엄마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그런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나를 키웠을까. 오빠보다 같은 성별인 나를 키울 때 더 각별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엄마에게 나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보상해줄 만큼의 존재가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서 또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의 보호자 되기

올해 엄마와 보낸 하루 중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오빠의 결혼식을 앞두고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 엄마의 머리 염색을 예약했고 연차를 냈다. 엄마와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 나름 동선을 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손태진 가수의 음악을 전곡 재생하며 엄마를 차에 태우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회사와 멀지 않은 미용실이라서 익숙한 길인데, 머릿속에 길 회로가 없는 나는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실시간 교통량을 반영한 새로운 길로 뺑글뺑글 돌아서 겨우 도착했다. 주차장이 예상과는 다른 형태여서 도착할 때쯤 넋이 나가 있었고, 엄마가 머리를 하는 동안 나는 미용실 한 귀퉁이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당시 외서를 만들고 있었는데 저작권사 컨펌이 있어 제목을 빠르게 확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날 야근하며 제목안을 썼는데도 다 완성하지 못했고, 다음 날 있을 제목회의 자료를 팀에 공유하기 위해 마음 졸이면서 제목안을 정리했다. 미용실에 흐르는 빠르고 경쾌한 음악 사이에, 이어폰을 끼고 시간에 쫓기며 제목을 쓰고 있는데 문득 과거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엄마가 출근 가방을 메고 녹색 어머니회 앞치마를 두르고 교통정리를 하던 모습이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고 하셨고, 엄마 순서가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어머니가 바쁘셔서 못 하시면 얘기해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소심했던 나는 그 말을 선생님께 전하지 못했다. 결국 무조건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던 엄마는 바쁜 틈을 타서 교통정리를 하고 바로 출근하셨던 것 같다. 그때 엄마를 덜 바쁘게 할 수 있었는데, 살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엄마에게 미안했던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 그때 엄마도 이런 상황이었을까, 나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기 위해 늘 바쁘게 쫓기듯 살지 않으셨을까.

엄마의 염색 비용을 내고, 엄마의 머리를 예쁘게 해주신 디자이너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엄마와 함께 치과 스케일링 검진도 받으며, 늦은 점심도 먹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그렇게 엄마와 짧은 여행을 다녀왔는데, 엄마의 보호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이상하면서도 좋았다. 물론 엄마가 해준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지만. 엄마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나는 그 빚을 갚는 걸 진작에 포기했다.


엄마에게 바라는 것

엄마의 모든 걸 좋아하지만 엄마에게서 닮고 싶지 않은 점이 딱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것, 두 번째는 자신보다 가족을 더 생각하는 것. 엄마와는 달리 나는 나에게 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사고 싶은 걸 사고 경험하고 싶은 걸 한다. 게다가 나는 항상 나를 1순위로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무언가를 살 때마다 재고 또 재며, 내게 별로 관심 없는 사람에게조차도 마음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았구나 싶다. 엄마가 더 엄마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가족 생각은 더는 하지 말고 엄마 자신을 1순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며칠 전 엄마를 지하철역 계단에서 우연히 만났다. 엄마가 그 시간에 그 공간에 있을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뒷모습이 딱 엄마였다. 내가 입지 않는 겨울 점퍼, 내가 대학교 때 만들었던 바지, 그리고 이번 겨울까지만 신겠다고 한 가죽 벗겨진 신발까지. 엄마가 맞았다.

“엄마, 엄마” 하고 뒤에서 여러 번 불렀는데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던 엄마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옆에서 툭툭 치자 그제야 엄마가 나를 알아봤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포근하고 따뜻했다. 내가 엄마를 알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엄마에게 늘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고 고마워만 하자 우리. 그리고 많이 웃고 즐기며 재미나게 살자 우리.


엄마에게 장난처럼 자주 하는 이야기이지만, 전생의 나는 적어도 착하게 살았으리라고 확신한다. 엄마 같은 사람의 딸로 태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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