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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어떤 해였나요?

나에게 건네는 세 가지 질문

by 진심과 열심

얼마 전 교보문고에 갔다가 ‘올해의 기억’이라는 인쇄물이 놓인 걸 보았다. 작년 이맘때쯤엔 아는 동생에게 받은 백문백답 질문에 답을 해보며 한 해를 마무리했는데, 이번에는 질문이 3개뿐이어서 훨씬 간단했지만 오히려 생각이 많아졌다. 세 가지 질문은 이렇다.

1. 올해의 나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해주세요.

2. 올해 힘들진 않으셨나요? 힘들었던 순간을 적어주세요.

3. 올해 꼭 기억하고 싶은 행복했던 순간을 적어주세요.


세 가지 질문에 답해보아요.


한 해를 돌아보는 Q&A

1번의 답을 하긴 쉬웠다. 올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가장 많은 것을 감각한 해”라고 빠르게 대답할 수 있다. 일상도, 감정도 가장 다각적으로 풍부하게 느꼈다. 많은 것을 감각하게 되었다는 건 그만큼 일상이 여유롭고 안정을 찾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제일 밑바닥의 감정 상태를 경험했으므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을 봐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봄에 꽃이 피는 것만 봐도,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아니 그냥 흘러가는 구름만 봐도 좋았다. 그 찬찬한 움직임을 오롯이 감각하게 되었다. 내가 다시 이렇게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기쁘고 감사했다.


2번을 답하는 건 질문의 무게만큼 마음이 괴로웠다. 책의 결과가 예상보다 좋지 못해서 작가님들께 죄송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므로 올해 경험한 깨달음으로 내년엔 더 잘하자고 다짐했다.


3번의 답은 대답할 게 너무 많았다. 올해 봄만 해도 벚꽃이 만발하는 기간엔 내가 가까이에서 갈 수 있는 벚꽃 명소를 다 갔고, 그럼에도 아쉬워 점심시간에 혼자 여의도에 가서 지는 꽃을 구경하고 온 적도 있다. 적어도 하루에 100개의 꽃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으며 봄의 찬란함을 느꼈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때는 종교는 없지만 명동성당에 가서 저녁 미사에 참가하기도 했다. 마음이 원하는 거라면, 되도록 하며 그 순간의 행복을 기쁘게 누렸다.

며칠 전에는 올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언니에게서 추천받은 여행지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간월암’이었고, 엄마를 모시고 왕복 약 400킬로미터를 운전했다. 그동안 많이 해봐야 2시간이 넘지 않는 운전을 했었는데, 이날은 꼬박 6시간을 운전했다. 이 모험 덕분에 이제는 국내 어디든 달릴 수 있겠다는 성취감을 얻었다. 간월암은 썰물 때만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절이었고 오랜만에 소나무 피톤치드 향기도 느끼며 탁 트인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함께 추천받은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보았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얼핏 이름만 들었던 유적인데,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서민 불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보니 부처님의 미소가 자비로움을 넘어서 푸근하고 넉넉했다. 내년에 힘든 일이 생겨도 이 불상 사진을 보면 마음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이외에도 올해 동료들과 마라톤도 하고 주기적으로 독서 모임도 하며 재밌는 시간을 잔뜩 보낸 소중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쉽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행복’이란 단어는 늘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쉽게 꺼냈다가는 추상적이고 현실 감각 없는 사람처럼 비춰질 테니까. “일할 때 저에겐 행복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멋지게 말하는 사람도 보았다. 그런데 나는 스스로 세뇌하는 것도 아닌데, 정말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잦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건네준 인사, 맛있는 밥,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또 하루를 선물 받았구나 하고 느낀다. 작년에 변곡점을 지나왔기 때문에 더 크게 느끼는 거라고도 생각한다. 몇몇의 슬픔과 좌절을 제외하고는 인생의 기본값이 행복이 된 것 같다.


명동성당에서, 간월암에서, 마애삼존불상 앞에서 ‘저에게 올해 같은 한 해를 선물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드렸다. 내년엔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기에 올해 느꼈던 소중하고 감사했던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한다.

당신의 올해는 어떤 해였나요?

해피뉴이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명동성당 크리스마스 미사, 서산 간월암과 마애삼존불. 내년에도 무엇보다 많이 웃고 행복도 쉽게 느끼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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