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돌보며 산다는 것
이번 주말 동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드라마 열두 편을 몰아서 봤다. 연말부터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긴 호흡의 드라마를 시작하는 게 어쩐지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 일주일간 마음 졸이던 일이 있었고 결과가 어찌 됐든 실행했기에, 내게 주는 보상으로 이 드라마를 보았다.
제목처럼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인데, 정신질환이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서 좋았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하자면, 정신과 간호사인 주인공(박보영 배우 역할) 또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보호병동에 입원하기도 한다. 누구나 조금만 마음을 방치하면 일상을 유지하는 게 불가능할 만큼 탈이 날 수 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 배웠다.
아픔을 직시하며 보듬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들로부터 나 역시 치유를 받은 듯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오히려 머리가 맑아졌다. 마음에 닿는 대사도 많았는데, 특히 박보영 배우가 내레이션처럼 말하는 12화의 마지막 대사가 너무 좋았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던 병희는 자신만의 해답을 찾았고
불안과 안정의 경계에 있던 유찬은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방법을 찾았고
우울과 비우울의 경계에 있던 나는 우울보다 먼저 찾아와주는 그 사람이 생겼다.
우리는 모두 낮과 밤을 오가며 산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기운이 펄펄 나는 날도, 맥이 쪽 빠지는 날도 있다. 같은 하루 안에도 여러 기분을 걸쳐 입는다.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뿐만 아니라, 어둡고 초조하며 무력과 슬픔을 느끼는 것도 나의 또 다른 얼굴임을 부정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낮과 밤 모두가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시간이니까.
나를 돌볼 시간이 부족할 때면 여지없이 마음의 여파가 생긴다. 이렇게 벌어진 작은 균열은 가장 먼저 나를 흠집 낸다. 가장 비난하기 쉬운 상대는 바로 나 자신이니까.
마음을 돌본다는 것 자체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잠시 멈춰서 감정 상태를 들여다보면 되는 걸까, 내가 지금 슬픈지 기쁜지를 알아차린다는 뜻일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드라마에서 몇 가지 힌트를 얻었다.
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솔직하게 말하기
누군가를 배려하고 양보하기에 앞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해지자. 그리고 해를 끼치지 않는 욕구라면 상대에게 전하자. 나도 어제 몇 가지를 실천했다. 선배와의 점심 약속을 앞두고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을 말했고, 팀장님께는 내가 애쓰고 있음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은 가뿐해졌다.
② 칭찬 일기 쓰기
극 중에서 박보영 배우가 처방받은 방법인데, 인터뷰에서 실제로도 자신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무척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다. 노트에 아주 사소한 거라도 나를 칭찬하는 내용을 끄적이면 된다. 문맥을 고려할 것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쭉 나열하는 거다.
예를 들면,
오늘 누군가에게 빙그레 웃어준 나를 칭찬해.
아침을 맛있게 다 먹은 나를 칭찬해.
운동화 끈을 잘 묶은 나를 칭찬해.
더는 미루지 않고 글을 쓴 나를 칭찬해... 라고 쓰면 된다.
간단하지만 효과는 꽤 즉각적이다. 칭찬 일기를 쓴 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도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쭉 쓰다 보면 생각보다 내가 칭찬할 게 많은 사람임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드라마를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는 잘도 건넨다는 거다. 그것도 무척 자주. 결국 내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드라마에 의하면, 정신병동에는 자해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커튼이 없어서 다른 병동보다 아침이 가장 빠르게 찾아온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를 좀 더 아끼고 사랑해주자.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리고 그 사랑의 출발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저는요. 선생님이 저를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가 간호사 역할의 박보영 배우에게 이야기할 때, 박보영 배우는 환자에게 정성껏 힘을 주어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 말고 스스로를 많이 좋아해주세요. 아껴주시고요. 그럼 돼요. 다시는 이렇게 아프게 하지 말고요.”
이 대사가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한마디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많이 좋아해주고 아껴주자. 모든 건 이것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