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권의 책에서 얻은 깨달음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을수록 ‘꾸준함’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무언가를 이루는 근본적인 비결이자,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은 ‘꾸준함’이 아닐까 하고. 누군가의 극적인 변화를 목격할 때면 이제는 부러움보다는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 사람도 쉽지 않았을 텐데 하루하루 부단히 쌓아왔구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냈구나’ 싶어서.
최근에 읽은 세 권의 책에서도 그 진실을 한 번 더 마주했다. 분야는 각각 다르지만, 관통하는 이야기는 같았다. 책들에서 발견한 ‘꾸준함’에 관한 진리를 기록하고자 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즐거움’이라고 배워왔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람은 로봇이 아니기에, 늘 마음이 같을 순 없다. 분명 어떨 때는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해나가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 이를 잘 알지만, 즐거운 마음이 오래가지 못하고 쉽게 지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차에 심장을 쿵 때리는 문장을 만났다. 50대 구글 디렉터인 정김경숙 작가님의 신간에서였다. 내가 책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영역을 지치지 않고 하던 분이었다. 마르지 않는 열정으로 일도, 공부도, 운동도 꾸준히 해나가시는 게 너무나 부러웠다. 그런데 작가님마저도 “반드시 지겨워지는 날이 온다”고 “꾸역꾸역 영혼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하셨다. “멈추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어느덧 또 재미가 돌아온다”라고.
사실 제아무리 재미있는 콘텐츠도 반드시 지겨워지는 날이 옵니다. 그런데 저는 지루해도 하다 보면 흥미를 다시 되찾는 때가 온다고 믿어요. 타성에 젖어서 한다는 말이 있죠. 하기 싫은데 억지로 꾸역꾸역 영혼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세상에 위대한 일은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할 때 이뤄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어느덧 또 재미가 돌아옵니다. 운동도 공부도 직장생활도 하고 싶은 날보다 하기 싫은 날이 더 많은 법이죠. 누군가가 성공했다면 그 사람은 하기 싫은 일을 더 오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 176~177쪽
어린 시절부터 얼마 전 회사에서 받은 평가까지 거의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는 말은 ‘성실하다’, ‘책임감 있다’와 같은 말이었다. 지금은 이런 평을 너무나 감사하게 여기지만, 학창 시절엔 ‘특출한 재능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때도 있었다.
사회초년생이었을 때는 “노력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잘해야지”라는 말을 익히 들었기도 했다.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내가 일머리가 없는 건 아닐까 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실함도 재능’이라고 분명히 말해주는 문장을 만나서 깊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 번역가 황석희 님의 에세이였다.
실패하고 배우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박이는 성실함. 이런 미련한 성실함은 단순해 보여도 아무나 쉬이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다. 조직의 입장에선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것이 치명적일 때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개인에겐 결과보다 노력이 중요할 때도 있다. 이상론, 낙관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렇다. 갈수록 재능이니 결과니 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노력과 성실을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나는 아주 고깝다. 뭔가를 성취해낸 사람을 보면 노력의 방향을 잘못 잡았을지언정 바보 같고 우직하게 자기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들인 경우가 훨씬 많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주위에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다. 노력과 성실도 재능이라는 걸 언제쯤 이해할는지. -《번역: 황석희》, 30쪽
성공한 사람의 부풀려진 사연이 미디어에서 한 번 더 가공되어 환상을 심고 그걸 본 사람들의 기를 죽인다. 너무 꼰대 같고 재미없는 소리지만 일정한 성취에 기본이 되는 건 따분하고 지루하고 고된 반복을 묵묵히 견디는 무던함 그리고 제 살길을 어떻게든 찾아내 지속할 줄 아는 현실감이다. 대개는 그런 것들이 쌓여 성취가 된다. ‘대개는’. -《번역: 황석희》, 89쪽
계속해나간다는 건 사투에 가깝다. ‘할까 말까’에서부터 시작해서 매일매일 자신과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이겨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중요하기’ 때문일 거다. 아래 문장을 읽고 인생의 귀한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무엇이든 계속하면, 그것은 세상에도 나에게도 중요한 것이 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면 그것이 곧 중요한 것이 된다. 반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영화 〈작은 아씨들〉(2019)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였다. 자매들의 삶을 다룬 소설을 출간한 조는 그런 소재가 당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며 자조한다. 이에 대해 그녀의 여동생 에이미가 말한다. 계속 쓰면 그것이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계속하면 중요한 것이 된다고 말이다. 영화의 맥락에서 이 대사는 그 시대의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글에 대한 것이었지만, 나는 이것이 삶 전체에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계속하면, 그것은 세상에도 나에게도 중요한 것이 된다. 세상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면 그것이 곧 중요한 것이 된다. 반대로, 계속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99쪽
이번 주에 내 일상은 매우 단순했다. 아침에 꽉 막히는 도로 위를 운전해서 회사에 가고, 계속 일하다가,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뻥 뚫린 도로를 질주해서 퇴근하는 삶이었다. 5일 내내 거의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런데도 이전처럼 일상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하루 전체가 소모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를 곰곰이 들여다보니 나를 지키는 루틴 두 개는 완성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계속 해온 줄넘기와 일기 쓰기다. 어느덧 이 두 가지는 내 하루에 꼭 빠져서는 안 되는 무척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마치 생존키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꾸준히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변화도 조금씩 체감해가고 있다. “계속한 것은 엄청난 무엇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내 삶을 증명하는 고유한 무언가만큼은 남긴다”라는 아래 문장의 의미를 차츰 실감하고 있다.
매일 아침 내려 마신 커피가, 매일 저녁 나선 아이와의 산책이, 매일 밤 읽은 성경 몇 줄이, 매일 새벽 녹음한 몇 분이, 매일 쓴 글 몇 장이, 매일 사진 찍은 집 앞의 담벼락이, 매일 뛴 강가가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고유한 가치를 지니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역시 계속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어떤 영역에 있는 빛과 같다. 대개 계속한 것은 시대를 뒤바꿀 만큼 엄청난 무엇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내 삶을 증명하는 고유한 무언가만큼은 남긴다. 계속하는 사람만이 만날 수 있는 삶의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오름으로써 삶이 내 것이 되고 신비로운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101~102쪽
계속한다는 건, 꾸준하다는 건 전혀 촌스럽지 않다. 한 사람의 삶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본값이자 매일의 역사를 만드는 위대한 행동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