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내게 무심하지 않기로 했다
표지 시안을 자르다가 내 손도 함께 베어버렸다. 원래 표지 시안은 하나하나 자르는데, 지난주에 디자이너님께 한 번에 자르는 법을 배웠다. 여러 종이를 겹친 후 힘을 주어 한 번에 자르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시간도 아낄 겸 힘껏 칼로 그었는데 하필 표지 위에 대고 있던 자가 엇나가서 종이 대신 내 왼손 엄지손가락을 긋게 되었다. 아뿔싸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이미 일은 벌어졌다. 피만 멈추면 상처는 언젠가는 아무니까 일단 피를 멎게만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코로나 이후 사무실 어디든 비치되어 있는 소독용 티슈로 엄지손가락을 몇 번 움켜쥐었다. 제법 상처가 깊다는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독용 티슈 두 장에 피가 꽤 묻어났다. 피가 멈출 기미가 안 보이길래 아래층 사무실까지 내려가서 구급상자를 찾았다. 자세히 보니 살갗이 벌어져 있어 그 위에 후시딘 같은 연고를 소스 뿌리듯 대충 뿌렸다. 그리고 다친 곳 위에 두터운 솜 다섯 장을 올려서 붕대로 감았다. 손은 우스운 모양이 되었지만 다행히 솜 위로 피가 번져 나오진 않았다.
워낙 남한테 “저 다쳤어요” 하고 호들갑 떠는 성격도 못돼서 다시 내 자리에 와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을 시작했다. 약간 몸에 힘이 빠지는 듯했고 왼손 엄지손가락이 욱신대는 느낌은 있었지만 응급처치는 했으니 괜찮겠지 하고 무덤덤하게 일했다. ‘내 손을 내가 긋다니 정말 바보 같다, 너는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치는 사람이야’라고 약간의 비난을 내게 던졌다. 오후 3시쯤 벌어진 일이었다.
마감도 얼마 남지 않았고 오늘은 야근하며 교정지를 많이 보자는 다짐을 하고 출근했기에 동료에게 괜찮으면 야근 밥을 먹고 오자고 연락했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동료를 만났다. 그런데 동료가 손이 왜 그러냐고 한 번에 내 상황을 알아차렸고 표지 시안을 자르다 손을 그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니, 예전에 어떤 분도 병원에 가서 꿰맸다고 병원에 가보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해줬다. 나보다 나를 더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우선 밥을 먹고 붕대를 열어 상태를 살펴본 뒤에 가겠다고 동료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동료와 밥을 먹고 헤어졌는데 ‘이제는 나를 챙겨보자, 나를 아껴보자’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휴대폰으로 검색하니 회사 근처에 저녁 늦게까지 하는 정형외과가 있었다. 손이 괜찮으면 괜한 돈을 쓰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소독이라도 제대로 받겠지 하는 생각으로 병원 문을 열었다.
7시가 넘은 시간 진료 접수를 하고 간호사분께 상처를 보여드렸다. 그런데 간호사분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고 “이 정도 깊은 상처면 무조건 꿰매야 해요”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해주셨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아 심각한 상처구나’ 싶었다. 병원분들께서는 번갈아가며 “방금 전에 다치셨냐”고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내게 물으셨고 “오후 3시쯤에 다쳤는데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웃으며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이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셨다고요?” 하고 놀라는 표정으로 나에게 되물으셨다.
의사분과 상담을 하니 쇠칼이었기에 파상풍 위험도 있어 파상풍 주사도 맞아야 하고, 앞으로 일주일 정도는 매일 항생제를 맞고 소독하러 나와야 한다고도 말씀해주셨다. 단순히 오늘 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일이 점점 커지는구나 싶었다.
생각보다 범위가 커진 치료 과정은 이랬다. 우선 다친 손과 아닌 손 양손 모두 엑스레이를 찍었고, 항생제 부작용 여부를 알아야 해서 왼팔에 항생제를 일부 투여해 반응 검사를 했고, 왼손 엄지손가락 전체를 소독하고 그 위에 마취 바늘을 네 번이나 찔러 마취한 후, 의사분과 간호사분 두 분이 협조해서 정성껏 네 바늘을 꿰매주셨다. 그 후에 20분 동안 항생제 한 통을 왼쪽 팔에 수액 받았고, 엉덩이에 파상풍 주사까지 맞았다. 일주일 동안 약도 먹어야 한다고 하셔서 처방전을 들고 지하철역 안 늦은 시각까지 하는 약국에 갔다.
약사분도 처방전을 보시며 내게 상처가 깊으시냐고 물으셨고, 당분간 상처에 물뿐만 아니라 차가운 것도 닿으면 안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또 살이 하루에 1센티씩 자란다고 친다면 신경세포는 1밀리씩 천천히 자란다고, 최대한 안정을 취하시라고 정성껏 힘을 주어 설명해주셨다. 그 마음이 고마워서 “감사합니다” 크게 인사하고 약을 들고 회사로 복귀했다. 도착해서 약을 먹고 정신을 차려보니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당분간 병원 때문에 재택근무도 못 하고 사무실에 꼬박 나와야 하니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집에 가자’ 싶었다. 교정지를 들고 회사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며 오늘 내게 벌어진 일을 찬찬히 떠올렸다.
신체에서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왼쪽 엄지손가락일 뿐인데, 이렇게 지난하고 정성 어린 치료가 필요했다. 의사분은 이런 과정이 끝나고도 흉터가 남을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셨다. 나 혼자 덮어두면 그만이었을 상처가 알고 보니 여러 사람이 걱정했을 상처였고, 오래 남을 수도 있는 상처였던 것이다. 상처는 이렇게 꿰매고 보듬어야 한다는 거. 이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왜 잊고 살았던 걸까. 이전에 나는 몸에 작은 상처가 나도 ‘내가 연예인이 될 것도 아닌데’ 하며 무던하게 약도 잘 바르지 않았었고, 그래서 몸 군데군데에는 자잘한 흉터가 많이 남아 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처 역시 외면해왔다. 마음의 상처는 누가 알아차릴 수도 없기에 들킬세라 깊은 곳에 꽁꽁 봉인해두었다. 그래서 얼마나 상처가 깊은지, 어떤 모양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전혀 가늠하지도 못했다. 깊은 곳에 묻어두면 서서히 사라질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상처들은 해소되지 못해 매일매일 스멀스멀 틈날 때마다 내 머릿속을 비집고 올라와 내 하루의 일부를 잠식시켰는데도 말이다.
지금보다 어렸을 적엔 감정에 작은 스크래치만 일어도 몇 날 며칠을 괴로워했다. 타인의 뾰족한 말, 나를 무시하려는 눈빛 모든 게 상처였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나이를 먹으며, 상처가 쌓이고 쌓여 마음에 굳은살이 박였다고 생각했다. 무뎌진 감정에 오히려 안도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건가 싶었고 상처에 무딘 사람이라는 포지셔닝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괜한 쎈 척이었다. 하나도 세지 않으면서.
상처가 곪을 대로 곪을 때 내 몸에서 내보낸 건 ‘울음’이었다. 낯선 나라 여행지 도로 한복판에서 펑펑 울기도 했고, 전혀 무방비 상태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에게 어퍼컷을 맞으면 수습이 안 될 정도로 눈물 한 바가지를 흘렸다. 내 눈물샘엔 괄약근이라곤 없었고 감정조절이 전혀 안 됐다. 상처는 외면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히 내 안에 남아 언제 다시 벌어져 피가 철철 흐를지 모르는 활화산 같은 상태로 존재해 있었다.
이번 경험을 기점으로 다짐했다. 내 마음의 상처는 내가 제일 잘 보듬고 보살피며 살자고, 상처가 생길 때면 대면할 시간을 갖자고 그리고 그 상처 위에 반창고까지 붙여주자고…. 힘들겠지만 이전에 묻어두었던 상처들도 하나하나 꺼내 마주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 얼마나 오래 곪아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밖으로 꺼내 그 위에 햇살을 내리 쬐줄 거다. 새살이 돋아나지 않아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내 흉터들을 사랑해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