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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과 열심 Feb 25. 2024

그냥 나를 위해 산다

거창한 목표 대신 막연한 꿈 대신

삶의 목표를 잃었다. 아니 애초에 제대로 설정한 목표가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스무 살 무렵엔 막연한 목표가 있었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고,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싶었으며, 언젠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극본상을 받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꿨다. 이 비현실적인 꿈들을 위해 스물세 살에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고 일하는 틈틈이 드라마 아카데미와 영화 시나리오 학원에 다녔다.

꿈과 현실을 맞춰가다가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새 꿈꿔왔던 목표들은 더는 내게 중요하지 않은 실낱처럼 희미한 존재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전혀 불행하지 않다.

일하는 초반에는 꿈을 잊고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스스로를 비난했지만 지금은 그냥 내 모습에 만족한다. 지금의 나도 하루하루 잘 살아가려 애쓰고 성취감도 맛보며 성장하고 있다고 느끼니까. 이렇게 살다 보면 또 재미난 일들을 우연한 기회에 새로 시작할 수도 있겠지 싶다. 닿을 수 없는 목표에 짓눌려 사는 것보다, 일상에 발을 딛고 뚜벅뚜벅 씩씩하게 살아가는 게 더 옳은 방향이라는 걸 깨달았다.


몇 년 전 서점에서 이런 책을 만났다. 《야, 걱정하지 마 우리가 뭐 우주를 만들 것도 아니고》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 제목을 본 순간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이때부터였던 거 같다. 일상의 많은 문제들이 조금씩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았을 속상한 일이 생겨도 이제는 툭툭 잘 털어낸다. 우주에서 보면 난 먼지 티끌조차도 안 되는 작은 존재이기에 덜 심각해도 된다고, 그냥 스스로 행복하게 살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자주 떠올린다.


글을 쓰는 목표도 단순하다.

내가 조금씩 글을 쓰고 있는 걸 알고 있는 동료가 글을 쓰는 목적에 관해 물은 적 있다. 책을 출간하고 싶은지 궁금해했다. 그런데 나는 책을 내고 싶은 욕망이 전혀 없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 걸까.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질문이었기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 이 고민을 이야기했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 뚜렷한 목표가 없다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냥 잘 살고 싶어서 기록하고 쓰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더니, 한 친구가 내게 “그게 더 멋있는 거예요”라고 말해줬다. 이 말이 묘하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단순히 잘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쓰는 과정 자체가 나를 살게 해주는 순수한 행위다. 이 기록들이, 이 시간이 이후 어떤 결과로 발현되지 않아도 괜찮다. 쓰는 동안 내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충분히 느꼈으니까.


즐거운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으면 된다.

대학 시절 단짝이었던 언니가 있다. 내가 방송 일을 하며 막연한 꿈들을 꿀 때, 언니는 작은 연극무대에 올랐다. 학교에 다닐 때 나보다 훨씬 좋은 성적을 받던 언니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터놓았을 때, 놀랐지만 응원해줬다. 꿈을 이루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나 또한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 후 언니의 초대로 몇 번 언니의 공연을 보았고 아주 작은 장면이지만 영화에도 출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사이에 내 꿈들은 희미해져갔고, 꿈을 현실로 이루기까지 막막한 기다림을 견딜 각오를 한 언니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중간에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언니는 더 이상 ‘연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파워블로거가 된 언니는 한 달에 한 번씩 내게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언니는 블로그를 관리하는 일이 “시간을 들이면 그만큼 결과가 보이는 일이어서 좋아”라고 말했다. 언니 또한 막연한 꿈에 한숨짓는 대신 현실을 딛고 매일 잘 살아가는 방법을 택한 듯했다. 직업 전환 자체를 어려워하는 나와는 다르게 새로운 도전을 하나씩 해나가는 언니를 보며 꿈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행복하면 주변도 행복해진다. 그거면 되었다.

인생에 큰 목표 없이 ‘그냥 나를 위해 산다’는 건 작고 이기적인 마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즐겁게 잘 살아가는 게 그렇게 작은 목표가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게 큰 힘이 되어주는 한 언니가 작년에 진심을 가득 담아 보내준 메시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나는 너를 알게 돼서 정말 감사해. 너를 아는 모든 사람이 너로 인해 행복감을 느끼고 그로 인해 너 또한 언제나 행복하고 향기 가득한 멋진 삶을 살 거야.”


처음엔 이 말이 왠지 쑥스럽게 느껴졌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로 인해 행복감을 느낀다니. 내가 과연 그런 엄청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불행한 것보다는 행복한 게 아무래도 주변에 더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지금 내 인생의 목표는 ‘그냥 나를 위해 사는 거다’. 그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다 보면 조금씩 주변도 환하게 만드는 그런 기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방법의 하나로 스스로를 덜 비난하기로 했다. 더 이상 목표를 위해 강박적으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중간중간 내 목소리를 들어가며, 불편한 상황은 최대한 줄이고 휴식도 잘 취해주려고 한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인생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각자가 짊어진 무게는 다르겠지만 최대한 가뿐하게 살아보자. 우리가 뭐, 우주를 만들 것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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