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심과 열심 Jul 14. 2024

외모를 소유한다는 것

무리해서 예뻐지고 싶은 마음과 이별했다

두 곳의 치과에서 교정 상담을 받았다. 과정은 비슷했다. 투명 개구기로 입 양옆을 한껏 잡아당기면 간호사분께서 DSLR 카메라로 내 치아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정밀하게 찍으신다. 3D 촬영도 한다. 장비의 볼록한 부분에 귓구멍을 맞추고 서면, 위이잉 기계가 회전하면서 내 얼굴을 스캔한다. 어쩐지 수선스럽고 볼썽사나운 모양새지만 괜찮다. 예뻐질 수만 있다면 이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하필 치아에 꽂혔나?

내 외모를 가장 부정했던 시기는 스무 살 무렵이었던 거 같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준비하며 폭식증이 생겼고 8킬로그램이 쪘다. 스무 살이 되자, 이 살을 빼지 못하면 나라는 사람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밥 한 숟가락, 고구마 하나, 우유 한 컵 정도를 먹었다. 그렇게 한 달 새 쪘던 살이 모두 빠졌고 다른 사람도 감지할 만큼 외모가 크게 바뀌었다. 당시 편입 공부를 하며 워낙 바빴기에 2년 정도 몸무게가 유지되었고, 이후 삶이 느슨해지면서 다시 엇비슷하게 몸무게가 늘어났다. 그 후 사회생활을 하며 자연스레 살이 빠져 오랜 기간 같은 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외모 콤플렉스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찍힌 사진을 볼 때면 돌출된 치아가 눈에 들어왔다. 삐죽 나온 앞니와 그로 인해 튀어나온 입이 싫었다. 이전엔 아무 생각 없이 활짝 크게 웃었는데 최근엔 입을 가리고 웃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이 꽂혀 있다 보니,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도 치아만 보였다. 모두 가지런한 이를 가지고 있었다. 고른 치아가 기본이라면 내 얼굴도 그렇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싶었다. 치아교정을 하면 얼굴선이 정리된다는 이야기도 들었기에 기대도 됐다. 더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자고 생각해 여러 사이트를 검색했고, 집에서 가까운 곳 중 신뢰 가는 교정 전문치과 두 곳을 찾은 것이다.      


외모 콤플렉스? 아니 내가 만든 콤플렉스

두 곳 모두 내가 원하는 결과처럼 돌출된 입을 넣으려면, 치아 4개를 발치해야 한다고 했다. 3D로 작업한 치료 후 사진을 보여주었다. 입이 5mm 정도 들어갔을 뿐인데, 얼굴 옆선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어딘지 낯설었지만 내 외모가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하고 기뻤다. 병원에서 말하는 교정 기간은 2년 반이었고, 철사가 아닌 투명 교정기를 원했기에 총비용은 600만 원 정도 든다고 했다. 투명 교정기를 낀 상태로는 물 이외에는 다른 음료를 마시지 못하기에 먹거나 마실 때에는 늘 교정기를 빼고 끼는 수고로움이 동반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드디어 인생의 숙원 사업 하나가 해결된 것 같았다. 치료 동의서에 서명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그런데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아무래도 이빨 4개를 빼는 게 가장 걸렸다. 몇십 년이 지나서 할머니가 되면 치아 하나가 아쉬울 텐데 생니를 뽑는 게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매일 교정기를 빼고 끼고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는 조금이라도 내 몸에 불편한 걸 하기 싫다는 마음도 불쑥불쑥 올라왔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내 이빨이 그렇게 이상한지 몰랐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분은 내 치아가 고르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 문제라서 크게 보인 걸까? 모든 걸 원점에서 고민해보기로 했다.


중심이 없으니 휘둘린다 

치아 교정과는 별개의 고민으로 타로를 봤다. 타로를 봐주신 분께서 갑자기 내 얼굴을 빤히 보시더니, 눈매교정을 하면 조금 더 좋은 일이 있을 거 같다고 하셨다. 눈이 불만족스러운 적은 없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또 내 눈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가로로 긴 내 눈이 독특해서 좋았는데, 이제는 미학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졌다. 눈매교정은 아무도 모르게 간단히 할 수 있는 거라고 하셔서, 성형외과 상담이나 받아볼까 하고 마음이 기울었다.

결론은 치아교정도 눈매교정도 모두 하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모든 게 성공적이어서 치아가 가지런해지고, 눈이 지금보다 한 끗 예뻐져도 나는 분명 내 얼굴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계속 찾을 거다. 그렇게 하나씩 이상적인 얼굴에 맞춰가다 보면 그 얼굴은 내가 아닐 거 같았다. 아무리 모두가 예쁘다고 하는 내가 거울 속에 있어도, 평생 가면을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거 같다. 내가 아닌 나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치아만 보이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그 사람 전체가 보인다. 오히려 개성 있는 얼굴일수록 좋아 보인다. 모든 얼굴에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삶의 깊이가 담겨 있으니까.

     

비로소 내 외모를 소유하게 되었다

친한 동생에게 치아교정 상담 이야기를 하니 다음 날 영상 하나를 보내줬다. ‘발가락 코 소년’이라고 불리던 로버트 호지(Robert Hoge)의 테드 영상이었다. 로버트는 안면기형으로 태어났다. 눈이 멀리 떨어지고 이마부터 코에는 큰 혹이 있어 발가락 연골을 잘라 코를 만들었다. 길이도 방향도 제멋대로 난 발로 인해 무릎 아래를 절단해서 인공 다리로 걷는다.

로버트는 이미 네 살 때 사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물리치고 얼굴에 큰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열네 살 때 의사들은 그가 더 완벽해 보일 수 있는 수술을 제안했다. 눈을 1cm 정도 가까이 모으고 더 나은 새로운 코를 만들어주겠다고 말이다. 다만 시각을 상실할 수 있는 위험이 있었다. 가족회의가 열렸고 형이 말했다고 한다.


“예뻐진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보이지 않는다면?”     


바로 그 순간, 로버트는 자신의 얼굴이 비로소 받아들여졌다고 회상한다. 만약 수술이 성공해서 의사들이 자신을 평범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자신은 결코 완전히 평범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항상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을 거라고.      

그의 테드 영상은 “우리 대부분은 자신의 얼굴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로 시작한다. 마치 그가 내 얘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그의 강연 영상을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뻐진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요? 그게 내 모습이 아닌 것 같다면?’      


내 외모가 여기서 더 크게 변화되지 않는다고 인정하자 나도 한결 편해졌다. 이 외모를 기본으로 멋지게 살자고 다짐했다. 교정 비용으로 마련해 둔 돈은 분명 내 돈이지만 갑자기 공돈이 생긴 것만 같다. 이 돈으로는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망설였던 것들을 가감 없이 하기로 결정했다. 나를 위한 든든한 후원금이 생겨서 기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